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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비하인드] 이성계의 의형제 여진족 이지란, 조선의 북방 만주 강역을 지키다 [한국통사 비하인드] 이성계의 의형제 여진족 이지란, 조선의 북방 만주 강역을 지키다 이지란과 그의 아들 이화영은 ‘여진족’(후에 만주족)이다. 이지란의 여진족 이름은 ‘쿠란투란티무르’이다. ‘란’자를 한자로 쓸때 난(蘭)자를 썼기 때문에 ‘이지란’이 된 것이다. 이지란은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었고, 왕성인 이씨를 하사받게 되면서 이씨로 개창하였다(청해 이씨). 청해는 지금의 북청인데, 원래 이지란의 본거지는 함경도 북청이 아니라 두만강 북쪽이었다. 이지란의 아버지는 ‘아라부카’로 두만강 북쪽의 천호(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을 받아 설치한 관직)라는 벼슬에 있던 인물이다. 이성계의 집안도 두만강 북쪽 연변 지역에서 원라나라의 벼슬을 하던 집안이었다. 이성계는 동이족 내의 한민족이고, 이지란은 동이족 내의 여.. 2021. 7. 6.
[삼국통일6] 미실과 선덕여왕, 근친혼의 나라(Feat.김유신의 여동생들) [삼국통일6] 미실과 선덕여왕, 근친혼의 나라(Feat.김유신의 여동생들) 신라는 근친혼과 동성애(화랑도)의 나라? 진흥왕이 ‘원화’라는 집단을 만들었다(화랑도의 기원). 진흥왕은 자신의 애첩인 ‘교정’과 ‘남모’를 원화 집단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그 밑에 젊은 남자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진흥왕의 마인드가 살짝 의심이 간다) 이때 남모가 교정보다 인기가 더 많아서 교정이 질투하게 되고 남모를 남모르게 제거해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진흥왕이 교정을 죽이고 이후 남성 중심의 집단(화랑도)을 만들게 된다. 화랑도의 결속력은 상당히 충성스러웠다. 이들의 결속력에 의해서 향가인 ‘모죽지랑가’, ‘찬기파랑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화랑도의 우두머리를 ‘풍월주’(김유신, 사다함)라고 했다. 진흥왕의 장남 동.. 2021. 7. 6.
[삼국통일5] (역사적)지역감정의 시작? [삼국통일5] (역사적)지역감정의 시작? 살수대첩 때 우중문이 평양성을 공격하려고 했다가 돌아갈 때 청천강(살수)에서 을지문덕이 강의 수위를 얕게 둑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그런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내용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고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살수대첩 시기에 백제의 왕은 무왕(재위 600~641)이었다. 무왕의 아명이 ‘서동’이다. 백제의 왕자 서동과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서동요... 『삼국유사』). 진평왕 큰딸 : 천명공주(김춘추 母) 둘째 : 덕만공주(선덕여왕) 셋째 : 선화공주 『삼국유사』에는 무왕이 선화공주와 익산 지역을 가다가 익산 미륵사 터에다가 절을 세우고 석탑을 .. 2021. 7. 6.
[삼국통일4-2] 살수대첩(본편)-둘 중에 하나는 망하는 전쟁(사라진 을지문덕과 이름 없는 요동성주) [삼국통일4-2] 살수대첩(본편)-둘 중에 하나는 망하는 전쟁(사라진 을지문덕과 이름 없는 요동성주)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병력은 113만 명이었다. 이 병력은 정규군 30만에다가 보급병을 합한 숫자라는 이야기가 있고, 정규군이 113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13만 병력이 고구려 원정을 떠나는데, 선발대가 출발한 뒤 후발대가 출발할 때까지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선발대와 후발대의 간격은 960리(400km)였다고 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선발대가 서울에서 행군하고 있으면 후발대는 부산에서 행군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13만의 숫자는 어쩌면 당시 고구려 인구를 200만으로 봤을 때, 절반의 인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고구려 남자 전체인구에 해당하는 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 2021. 7. 4.
[삼국통일4-1] 살수대첩(서막)-요서에서 증발해버린 수나라 군대 30만의 미스테리(13분 순삭Ver.) [삼국통일4-1] 살수대첩(서막)-요서에서 증발해버린 수나라 군대 30만의 미스테리(13분 순삭Ver.) 살수대첩(612년) 위진남북조를 360년 만에 통일한 수나라 문제(541~604, 재위 581~604)의 통치는 ‘개황의 치’(581~604)라 불리는 데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수습하며 국가를 안정시켰다. 당시에 동돌궐과 거란 등도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게 납작 엎드릴 정도였다. 수나라 문제는 다른 나라 왕들에게 입조(入朝)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고구려 영양왕(?~618)은 입조를 거부하였다. 이때 문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하가 장강보다 넓더냐?” 자신은 양쯔강(장강)을 넘어 진나라를 멸했는데, 요하 쯤을 건너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었다. 영양왕(?~618)은 평강왕의 아들로 수나라의.. 2021. 7. 4.
[삼국통일3] 21세기 용중(친중)은,,, 사대? 중립외교? (Feat.무서운 북방민족?) [삼국통일3] 21세기 용중(친중)은,,, 사대? 중립외교? (Feat.무서운 북방민족?)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미 동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민족’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농경민족인 중국의 정통왕조와의 전쟁은 7세기 당나라 이후 20세기 한국전쟁까지는 없었다. 대부분 요나라(거란), 금나라(여진), 원나라(몽고), 청나라(후금, 만주족)와의 전쟁이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한국인을 더 좋아하고 오늘날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한국인을 그나마 인간으로 생각했다(물론 일제강점기에 가혹한 통치를 했지만)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들은 중국인과 일본인 모두를 싫어한다. But 국익을 위해서는 용미, 용일, 용중을 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은 우리의 경제에.. 2021. 7. 4.
[삼국통일2] 15분만에 끝내는 중국사(중국왕조를 우리나라 왕조와 매치업) [삼국통일2] 15분만에 끝내는 중국사(중국왕조를 우리나라 왕조와 매치업) 하나라 : 전설상의 왕조 은나라(상나라) 주나라 춘추시대 : 춘추오패(제, 진, 초, 오, 월) 전국시대 : 전국칠웅(연, 위, 제, 조, 진, 초, 한) 진나라 한나라 삼국시대 위나라가 촉을 멸망시킴 위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가 오를 멸망시키면서 통일 북쪽의 오랑캐(5호 - 선비족, 흉노, 저, 갈, 강)가 쳐들어옴 진나라는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동진’으로 존속 북쪽의 오랑캐게 16개 나라를 세움(북위가 북쪽을 통일함) 동진 - 송 - 제 - 양 - 진 북위가 북제와 북주로 나뉘고 북주의 외척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통일함 수나라 당나라 5대 10국 분열기 송나라(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 2021. 7. 4.
[삼국통일1] 바보 온달인가? 대장군 온달인가? [삼국통일1] 바보 온달인가? 대장군 온달인가? 4세기 - 백제 전성기 5세기 - 고구려 전성기 (고구려 vs 나제동맹) 6세기 - 신라 전성기 (여제동맹 vs 신라) 7세기 - 삼국통일기 (돌궐-고구려-백제-왜 vs 신라-수ㆍ당) 6세기에 고구려는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안장왕, 안원왕, 양원왕, 평원왕). 이 시기에 고구려 내부에는 귀족들의 다툼이 있었다. 이 시기에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탈환한다. (이후 신라가 뒤통수 쳐서 한강 하류까지 장악한다.) 6세기에 신라에는 엄청난 왕들이 등장한다. 지증왕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신라라는 국호를 사용하였으며, 우산국을 복속하였고, 순장을 금지시켰으며 동시(시장)를 설치했다. 법흥왕은 신라의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시킨 왕이다. 그.. 2021. 7. 4.
[병자호란14] 흔적 [병자호란14] 흔적 인조는 하늘에 삼배구고두례, 홍타이지에게 삼베구고두례, 그리고 홍타이지에게 옷을 하사받고 이베육고두례를 하였다. 총 24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떠나면서 ‘내가 조선을 정벌했음을 알리는 비를 만들어라’고 명령하였다. 우리 민족이 외적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던 흔적은 이전의 역사에도 있었다. 3세기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공격해서 국내성을 점령하고(동천왕이 동해안까지 도망감) 비석을 세웠다(관구검 기공비). 백제가 망했을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592~667)이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백제를 정벌했다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것 때문에 정림사지 5층 석탑이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다(백제를 정벌한 기념탑).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화 비석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2021. 7. 4.
[병자호란13]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13]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1636)이 일어나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개고생한다. 힘겹게 버티고 있을 때 강화도가 도르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에 항복할 의사를 밝힌다. 44일차(1월 27일) 인조가 황제의 약속을 확인하려는 국서를 보내다. “신은 성지를 받들고서부터 천지처럼 포용하고 덮어주는 큰 덕에 더욱 감격하여 귀순하려는 마음이 가슴속에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신 자신을 살펴보건대 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폐하의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게 드러남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서를 내림에 황천(皇天)이 내려다보는 듯하여 두려운 마음을 품은 채 여러 날 머뭇거리느라 앉아서 회피하고 게을리하는 죄만 쌓게 되었습니다. 이제 듣건데 폐하께서 곧 돌아가실 것이라..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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