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24] 정여립 / 시대를 너무 앞섰는가? 반역의 대명사인가? [유투브 원본] 선조 때 사림이 정계 일색을 이루며 정치권력을 사림이 장악하자마자 붕당이 시작된다. 붕당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강경파)와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온건파)이 대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당시 율곡 이이(1536~1584)는 동인과 서인 사이에서 나름 화해를 도모했던 인물이었다. 동인은 이황(1502~1571)의 제자들이 많았는데 이후 이이를 서인들이 끌어들여서 이이의 학문이 서인들에게 계승된다. 이이의 제자로 서인쪽에 가까웠던 인물이 정여립(1546~1589)이다. 정여립은 조선의 역사 속에서 굉장히 뜨거운 인물이다. 그는 폐쇄적인 조선 사회에서 시대를 바꾸려는 인물이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1589)이 끝난 후, ..
[조선23] 조선의 붕당(동인(북인vs남인)vs서인) 중종의 7번째 아들의 세 번째 아들 하성군이 선조가 된다. 선조가 왕이 되었을 때 왕을 위협할 훈구세력이나 외척세력은 없었지만 사림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선조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는데 그것이 바로 붕당의 시작이었다. 붕당이 시작된 직접적 이유는 작은 관직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이조전랑(정랑+좌랑)이라는 5품이나 6품 정도 되는 관직이었다. 이조전랑은 3사 관리의 선발권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3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가리킨다. 3사는 나라의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3사의 관리직을 청요직(淸要職)이라고도 한다. 이조전랑의 권한을 통천권, 자천권이라고 한다. 김효원(1532~1590)이라는 인물이 이조전랑의 물망..
[조선22] 선 조 명종은 자기 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정말 바보같이 살았던 임금인데 자식복도 더럽게 없었다. 유일한 아들 순회세자(1551~1563)가 13살에 죽어버린다. 이후 혹시 아들이 없이 명종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명종의 사촌의 자식들 중에서 왕위를 이을 인재를 찾는다. 살아있는 사촌의 자식은 제외해야 했다. 왕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되었다. 중종의 7번째 아들 덕흥군(1530~1559)이 아들 셋을 낳고 죽었다. 익선관이라는 모자를 써보라고 했는데 셋째 하성군이 쓰는 것을 거부한다. 왕의 모자를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명종이 하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병에 걸려 갑자기 죽게 되었는데 명종의 부인 인순왕후을 가리켰고, 인순왕후가 명종이 하..
[조선21] 정난정+문정왕후 vs 명성황후, 누가 더 나쁜가? (의외의 결과) 조선은 착했지만 유약했던 인종(1544~1545)이 죽고 멍청한 임금 명종(1545~1567)의 시대를 거쳐 역대급 선조(1567~1608)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명종의 시대에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와 윤원형(1503~1565), 그리고 정난정(?~1565)의 독주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인종이 8개월만에 죽어버린다. 명종이 왕이 된 1545년에 마지막 네 번째 사화가 일어난다. [조선의 사화] 무오사화(1498) - 연산군이 ‘조의제문’으로 증조할아버지(세조)를 욕한 사림을 제거 갑자사화(1504) - 연산군이 폐비윤씨의 복수를 함 기묘사화(1519) - 조광조의 ‘주초위왕’ 사건 을사사화(154..
[조선20] 조선 역사상 가장 아까운 왕(조금만 더 살지) 인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중종의 첫 번째 아내는 단경왕후 신씨(1487~1557)였는데, 연산군 때부터의 권력자 신수근(1450~1506)의 딸이었다. 신수근이 중종반정(1506)에 참여하지 않아서 반정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반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수근의 딸이 중전이 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중전을 바꾸라고 한다. 중종은 조강지처를 보호하지 못하고 단경왕후 신씨는 7일만에 중전 자리에서 쫓겨난다. 중종의 두 번째 아내는 장경왕후(1491~1515)였는데, 첫째는 딸을 낳았고 둘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곧바로 죽게 된다. 장경왕후의 꿈 속에서 스님이 나타나서 아들 이름을 억명(億命)으로 지으라고 했고, 중종에게 유언으로 ..
[조선19] 개혁 군주? 웃기고있네~ 중종반정(1506) 이후 중종(재위 1506~1544)이 왕위에 올라서 38년간 집권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연산군 재위 12년(재위 1494~1506) 중에 마지막 2년에 미쳐 날뛰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연산이 가장 긴장하면서 경계했던 인물은 진성대군이었다. 성종이 폐비 윤씨 이후 새롭게 중전을 맞이했는데 그가 바로 정현왕후(1462~1530)였으며, 그의 아들이 진성대군이었다. 한번은 사냥을 나간 연산군이 진성대군과 누가 먼저 한양에 입성하는 가 내기를 한적도 있다. 자신은 흥인지문(동대문)으로 들어갈테니 진성대군에게는 숭례문(남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는데, 다른 이복동생인 영산군(1490~1538)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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