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23] 조선의 붕당(동인(북인vs남인)vs서인)
중종의 7번째 아들의 세 번째 아들 하성군이 선조가 된다. 선조가 왕이 되었을 때 왕을 위협할 훈구세력이나 외척세력은 없었지만 사림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선조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는데 그것이 바로 붕당의 시작이었다.
붕당이 시작된 직접적 이유는 작은 관직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이조전랑(정랑+좌랑)이라는 5품이나 6품 정도 되는 관직이었다. 이조전랑은 3사 관리의 선발권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3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가리킨다. 3사는 나라의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3사의 관리직을 청요직(淸要職)이라고도 한다. 이조전랑의 권한을 통천권, 자천권이라고 한다.
김효원(1532~1590)이라는 인물이 이조전랑의 물망에 오른다. 김효원에게 테클을 걸었던 사람이 심의겸(1535~1587)이었다. ‘김효원은 윤원형 집의 식객으로 있었다’라고 하면서 테클을 걸었다. 심의겸은 명종의 부인 인순왕후의 오라버니로 외척이었다.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고 이조전랑직을 다 수행한 후에 후임을 지명하는데 그때 이조전랑으로 물망에 오른 사람이 심의겸의 동생이었던 심충겸(1545~1594)이었다. 뒤끝이 있었던 김효원이 심충겸을 외척이라고 추천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후 심의겸과 김효원이 싸우게 된다.
김효원이 서울의 동쪽인 건천동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동인’이라고 불렸으며 신진사림이라고 하고, 심의겸은 서울의 서쪽인 정릉동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인’이라고 불렸으며 기성사림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싸움은 ‘아무개를 죽이자, 살리자!’였다. 훈구 척신의 잔재 세력을 청산하려는 것에 강경한 입장인 동인(김효원)과 온건한 입장인 서인(김의겸)으로 나뉘었다.
[붕당정치의 시작 이유]
- 선조의 관료들 분열 조장
- 한정된 관직
- 이조전랑 자천권 문제
- 훈구파 처벌 문제
처음에 동인이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동인의 스승으로는 조식(1501~1572), 서경덕(1489~1546), 이황(1502~1571) 등이 있었다고 한다. 동인의 인물 중에 정여립(1546~1589)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정여립 모반사건(1589, 기축옥사)이 나머지 300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축옥사는 조선을 통털어 가장 큰 옥사임에도 불구하고 훗날 인조반정(1623)이후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이 장악한 나라였기 때문에 17세기 이후 기축옥사와 정여립의 이름이 감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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