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 기수 「기독공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발간하는 주간 「한국기독공보」는 「가톨릭시보」의 소극적인 자세와는 달리, 일반 언론이 좌초되고 있을 때 과감한 필봉을 휘둘렀다. 70년대 전반기에 「기독공보」는 고군분투, 자유언론의 찬란한 발자취를 기록했다. 1946년에 창간된 「기독공보」는 70년 11월 21일자에서 일반 신문이 다루지 않고 있던 전태일군의 분신자살을 처음으로 다뤄 급기야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71년 4월 24일자에서도 일반 언론이 전연 외면해버린 「김진수사건」을 크게 다루었다. 전국 섬유노조 서울의류 지부 한영섬유분회원인 김씨(당시 23세)는 노조해체를 거부하다가 드라이버로 찔려 중태에 빠졌던 것이다. 홀어머니오아 여동생을 부양하고 있던 김씨는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그후 숨졌다. ..
누가 백성을 화나게 하는가? 민초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백성들... 민초들은 참 어리석었다... 그저 일용할 양식만 근근히 해결되는 착취의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다... 그러다가 그 일용할 양식마저 위협받았을 때... 들고 일어섰다... 그저 지금의 삶을 편안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씩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지도자이고 현명한 군주였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 선량한 농민들이 빨갱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육이나 사상의 주입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의 사슬에 어쩔 수 없이 빨갱이가 되어버린다...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정부와 지주에게 대항한 불쌍한 민초들을 '반공'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우며 죄인 취급을 한다... 밟으면 밟을수..
한일합병에 대한 일본기독교의 반응 한일합병이 발표되자 나라 잃은 슬픔을 자제할 수 없어 우국지사들이 하나 둘 자결의 길을 택했다. 스스로 자결을 선택하였던 자들은 주로 유생들이나 왕에게 충성심이 강했던 옛 관리들이었고 한국교회도 그들과 더불어 슬픔을 함께 하였다. 일본기독교인의 애국심은 비분강개하는 한국 국민들의 죽음을 불사한 애국심에도 전혀 아무런 동요도 없었고, 우치무가 간조(內村鑑三)의 동정적인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합병을 긍정적으로(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복음신보〉 1910년 10월 1일자 「대일본의 조선」 논평은 그 좋은 예이다. “한국은 드디어 제국의 판도로 합병되었다. 아침 햇살에 일장기를 휘날리며 계림의 아침이 진실로 선명해졌다는 것을 우리들은 진심으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에 대한 일본기독교의 반응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직을 사퇴하고 장래의 대륙에 대한 야망을 겸하여 만주시찰에 오르려 하던 중 하얼빈역에서 한 청년(안중근)의 탄환에 맞아 즉사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에 대하여 한국인들에 대한 자유로운 논평은 허락되지 않았으나 국외 한국계 신문들은 국내 여론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이 안중근의 행위를 의거라 하여 예찬하였다. 일본 국내의 일반 여론은 말할 것도 없이 애도 일색이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복음신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오늘날 국가 공신이었던 이토 공작을 오이(大井)촌에 묻으려 한다. 메이지유신혁명 당시부터 40여 년 후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
지금까지 고대사에 대한 왜곡은 소위 진보적인 재야학계에서 비판하였고, 고대사에 대한 과장은 기존사학계에서 재야학계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할 때 사용하였다. 아마도 과장이란 ‘환단고기’ 등을 근거로 해서 우리 민족에 고대의 세계를 지배한 커다란 제국이었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것 같다. 『고구려의 역사』를 쓴 이종욱의 관점에서는 고구려 멸망은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출발했다는 것과,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는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래는 그중 발해에 대한 입장이다. [533-539쪽] =-=-=-=-=-=-= 발해를 우리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부당하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발해(渤海)를 아사(我史), 즉 우리 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했다. 그런데 발해를 다루는 까닭은 발..
‘독부’ 이승만이 민족반역자ㆍ민주반역자인 증거 이승만 독재와 실정이 절정으로 치닫던 자유당 말기, 심산 김창숙은 ‘독부(獨夫) 이승만’이라 했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를 말한다. 과연 이승만은 독부였다. 자유당 말기뿐 아니라 미국 망명 기간, 귀국하여 단독정부를 세우고 12년 전제권력을 유지할 때가 다르지 않았다. 독재ㆍ독부ㆍ독선ㆍ독점 등 그에게는 홀로 ‘독(獨)’자가 유독 많이 따랐다. 물론 ‘독’에는 독립운동도 포함된다.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집필하면서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분장된 그의 망명기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추종자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포장하는 해방공간의 행적이 얼마나 사대적ㆍ반민족적이었는지, 집권기간의 전제정치가 얼마나 반민주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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