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책 이야기]38

[26일 동안의 광복] 8월 16일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8월 16일 여운형의 얼굴을 마주한 이인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민족적 성업을 하는데 단 몇 사람이 사랑방 문을 잠그고 수근대는 수가 어디 있냐” (165) 여운형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 1) 전 조선 각지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ㆍ경제범을 석방하라. 2) 집단 생활인 만치 식량이 제일 문제이니 8, 9, 10월 3개월간 식량을 확보ㆍ명도하여 달라. 3) 치안유지와 (국가) 건설사업에 있어서 아무 구속과 같섭을 하지 말라. 4) 조선 안에 있어서 민족해방의 모든 추진력이 되는 학생훈련과 청년 조직에 대하여 간섭을 말라. 5) 전 조선 각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를 우리 건설 사업에 협력시키며 아무 괴로움을 주.. 2022. 8. 8.
[26일 동안의 광복] 갈등의 시작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갈등의 시작 가장 큰 불안요소는 여운형과 송진우의 합작 불발로 발생한 건국준비위원회의 좌편향이었다. (145) 이임수가 말했다. “여 선생, 조심해야죠. 헌병이 길거리에 득시글거리잖우. 왜 이렇게 좌익만 만나는 기요? 주의자 서클은 안됩니다.” (146) 상하이 시절. 여운형의 ‘끈끈한 동지’였던 장덕수는 1919년 10월 고가 척식장관이 여운형을 도쿄로 불러들여 회유를 시도했을 때 통역으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전향한 뒤로는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추태를 보였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위해 피를 흘리라며 자신의 보성전문학교 제자들을 끌어내 학도병으로 지원시킨 것이다. 또한 이종형은 “.. 2022. 8. 8.
[26일 동안의 광복] 건국준비위원회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건국준비위원회 갑자기 닥친 해방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조선인... 리영희(1929-2010)... “나의 8ㆍ15 순간의 감상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런 감격이기보다는 멍멍한 느낌이었다.” 박두진(1916-1998)... “서울역에서 내리니 여전히 거리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경성역을 나와 남대문역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사람들 무리 속에 섞였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남대문을 향해 가고 있기에 그들을 따라 갔다.” (128-129) 여운형이 헌병대에서 빼낼 인물은 그의 평생 동지 이임수였다... 용산 헌병대에서.. 2022. 8. 5.
[26일 동안의 광복] 항복방송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항복방송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강제 폐간... 1940년 8월... 기자들이 호구를 위해 〈매일신보〉에 입사... 매신의 당사자인 조용만(1909-1995)는 “당시 매일신보 사원들은 그야말로 매신해온 사람들이어서 하루 신문지면을 만들어 채우면 그만이지 신문을 잘 만들어 보겠다는 열의도, 정성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107) 언론인 유광렬이 1947년 특별고등경찰로 근무했던 이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인 지식인 약 2만 명을 학살할 계획으로 명단을 작성했다. 시기는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로, 적군의 눈앞에서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명단을 작성한 것은 경찰이었고 실행주체는 헌병이었다. 다행스.. 2022. 8. 5.
[26일 동안의 광복] 경거망동을 삼가라 – 송진우의 8ㆍ15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경거망동을 삼가라 – 송진우의 8ㆍ15 1922년 5월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사회부장ㆍ편집국장 등 요직을 거친 설의식(1900-1954)이 처남을 통해 단파 라디오를 입수한 것은 1944년 늦은 가을이었다... 1936년 8월 일장기 말소사건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설의식은 사건에 책임을 지고 퇴사한 뒤, 해방무렵엔 광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8월 10일 평소 친분이 있던 〈아사히 신문〉 경성지국장 이슈인 가네오와 만났다. 이슈인은 뜻밖의 경고를 했다. “불일 내로 대량의 예비검속이 시작될 터이니 그대도 주의하라.” 이슈인의 경고를 들은 설의식은 전쟁이 최후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 2022. 8. 5.
[26일 동안의 광복] 소련군이 내려온다 – 총독부의 8ㆍ15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소련군이 내려온다 – 총독부의 8ㆍ15 ‘가야마 가에이’란 창씨명으로 조선총독부 총독관방 조사과장을 맡고 있던 최하영(1908~1978)... 1945년 1월 14일의 ‘기묘한 회의’에 대한 증언 에타가키 세시로(1885-1948) 조선군 사령관... “우리쪽 해군이 거꾸로 전멸 당했습니다...” 최하영은 1968년 월간중앙 8월호에 회의 광경을 생생히 묘사했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조선인은 최하영과 엄창섭(다케나가 가즈키) 학무국장 뿐이었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들었던 일본의 패전 예고”였다. (53-54) 최하영은 엔도 정무총감이 자신을 불러낸 날을 일본이 연합국에게 항복의사를 전한 바로 다음날인 11일.. 2022. 8. 4.
[26일 동안의 광복] 한밤의 전화 – 여운형의 8ㆍ15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한밤의 전화 – 여운형의 8ㆍ15 장권은 여운형을 성심껏 따르는 핵심 측근 중 하나로, 이 무렵 기독교 청년회 YMCA의 체육부 간사로 재직중이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시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체육인과 학생들이 그의 동지이자 부하였다. (28) 홍증식(1895-?)... 192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라는 두 민족지의 영업국장을 지냈던 신문 경영의 귀재이자,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28)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 조선의 1-2대 총독으로 무단정치를 시행하던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 시절 총독부 비서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후 3ㆍ1운동에 .. 2022. 8. 4.
[26일 동안의 광복] 8ㆍ15는 시린 상처였다 [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8ㆍ15는 시린 상처였다 냉전 해체 후 지난 30여 년간 이어진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단 하루’를 꼽으라면, 하노이의 ‘노 딜(No Deal)’이 결정된 2019년 2월 28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9) 스즈키 간타로(1868-1948)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항복’을 결단하는데 성공한다... 스즈키 내각이 붕괴했다면 일본의 항복은 두 달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면 소련군은 한반도와 사할린을 점령한 여세를 몰아 바다 건너 홋가이도로 밀려들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통일을 유지하는 대신 공산화됐을 것이고, 분단되는 것은 조선이 아닌 일본이었을지 모른다. (12) 안재홍이.. 2022. 8. 4.
728x90
반응형

TOP

TEL. 02.1234.5678 /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