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사 비하인드] 이성계의 의형제 여진족 이지란, 조선의 북방 만주 강역을 지키다 이지란과 그의 아들 이화영은 ‘여진족’(후에 만주족)이다. 이지란의 여진족 이름은 ‘쿠란투란티무르’이다. ‘란’자를 한자로 쓸때 난(蘭)자를 썼기 때문에 ‘이지란’이 된 것이다. 이지란은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었고, 왕성인 이씨를 하사받게 되면서 이씨로 개창하였다(청해 이씨). 청해는 지금의 북청인데, 원래 이지란의 본거지는 함경도 북청이 아니라 두만강 북쪽이었다. 이지란의 아버지는 ‘아라부카’로 두만강 북쪽의 천호(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을 받아 설치한 관직)라는 벼슬에 있던 인물이다. 이성계의 집안도 두만강 북쪽 연변 지역에서 원라나라의 벼슬을 하던 집안이었다. 이성계는 동이족 내의 한민족이고, 이지란은 동이족 내의 여..
[이덕일의 한국통사] 은나라 사람 기자가 고려와 조선의 중화사대주의로 인해 단군을 이은 정통으로 보고 평양에 묘를 만들다 기자조선에 대해서 많은 조선의 유학자들은 단군과 기자는 정통으로 인정하고 위만은 찬혁자가 반란자라고 보았다. 이것은 조선의 중화 사대주의 사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중국 은나라에서 왔다고 돼어 있기 때문에 중국 은나라에서 온 기자는 우리 정통으로 봐도 되겠다는 것도 일종의 중화 사대주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은나라의 시조가 설(契)인데,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이 세 여성과 함께 목욕하러 가다가 현조(검은 새)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설을 낳았다고 하는 ‘난생사화’로 전해진다. 이 난생사화는 동이족의 전통사화이다. 오늘날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덕일의 한국통사] 북한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로 본 고조선 강역과 한사군 위치는 고조선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동검과 중국 역사서를 근거로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의 강역도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상당히 오랜 논쟁거리 중의 하나이다. 1) 우선 우리 역사는 반도내에서 이루어졌다는 반도사관에서는 고조선의 강역이 평양과 대동강을 중심으로 한 평안남도에 있던 작은 소국이었다고 본다. 이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이고, 해방 이후에 국사학계의 태두라고 하는 이병도 박사가 주장을 하면서 남한의 강단사학에서는 고조선이 평안남도에 있던 작은 소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반면 과거 독립운동을 하면서 역사공부를 했던 분들은 고조선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까지 뻗쳐있던 강력한 제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
북망민족으로 중국을 침략해서 송나라를 남쪽으로 밀어내고 만주와 중원을 장악한 여진족의 금나라... 금나라 시조는 고려 사람인가?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 〈본기〉는 “금나라 시조 함보(函普)는 고려 사람이다. 처음에 고려에 왔을 때 이미 나이가 60여 세였다. 그 형인 아고내(阿古迺)는 부처를 좋아하여 고려에 머물러 있으면서 따라오려고 하지 않았다”며 금나라 시조가 고려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금국지(大金國志)》의 〈금국초흥본말(金國初興本末〉(금나라가 처음 흥한 본말)은 시조에 대해 “본래 신라인으로 성씨는 완안(完顔)씨이다. 완안은 중국어로 왕과 같은 말이다”라고 적고 있다. 여진족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던 것은 금나라 시조가 신라에서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진족은 고려를 섬겼지만 ..
북방민족으로 중원을 위협한 거란족이 세운 나라로 알려진 ‘요’나라는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에서 ‘발해’를 무너뜨린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요나라를 세운 ‘야율씨’가 고구려의 ‘고씨’의 후예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요나라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인가? 1986년 내몽골 통료(通遼)시 내만기(奈曼旗) 청룡산에서 요나라 진국공주(陳國公主, 1000~1018) 야율씨의 부부 합장묘와 가 발견되었다. 에 따르면 공주의 성씨는 요나라 황성(皇姓)인 야율(耶律)씨로서 경종(景宗)의 손녀이다. 그 아버지는 경종과 황후 소작(蕭綽)의 둘째아들이자, 요 성종(聖宗)의 동생인 진진국왕(秦晉国王) 야율융경(耶律隆慶, 973~1016)이다. 진국공주는 부마도위 소소구(蕭紹矩)에게 시집갔으나 그만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인들은 단군을 승려 일연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한의 강단사학도 아직까지 단군을 신화로 보고, 고조선은 아무리 빨라야 서기전 10세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논리로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을 부인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것을 남한의 식민사학자들이 그대로 추종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중국을 사대했어도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것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었다. 『삼국유사』의 가장 첫 부분에는 왕의 계보를 적어놓은 왕력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 왕력에 의하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조’의 ‘동명성왕은 추모왕이라고도 한다.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써 놓았다. 고구려는 단군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라는 말이다. 부여도 마찬가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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