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4-2] 살수대첩(본편)-둘 중에 하나는 망하는 전쟁(사라진 을지문덕과 이름 없는 요동성주)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병력은 113만 명이었다. 이 병력은 정규군 30만에다가 보급병을 합한 숫자라는 이야기가 있고, 정규군이 113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13만 병력이 고구려 원정을 떠나는데, 선발대가 출발한 뒤 후발대가 출발할 때까지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선발대와 후발대의 간격은 960리(400km)였다고 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선발대가 서울에서 행군하고 있으면 후발대는 부산에서 행군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13만의 숫자는 어쩌면 당시 고구려 인구를 200만으로 봤을 때, 절반의 인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고구려 남자 전체인구에 해당하는 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양제의 113만 대군을 요동성주가 완벽하게 막아내었다. 수양제는 30만의 별동대를 조직해서 곧바로 평양으로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별동대의 사령관은 우중문과 우문술이었다. 수양제는 이들에게 자체적으로 먹을 식량과 장비를 챙겨가라고 명령하였다(거의 50kg의 무게였다고 함). 이들은 행군이 힘들기 때문에 도중에 식량을 버리고 평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도중에 고구려 군은 지속적으로 게릴라 작전을 펼쳤다.
배도 고프고, 사기가 떨어져갈 무렵 을지문덕이 사신으로 우중문을 찾아온다. 당시에 고구려는 수나라를 맞이하여 청야작전(淸夜作戰)을 전개하고 있어서 수나라 병사들이 약탈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평양성에 가면 수나라의 수군과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평양으로 진격하였다. 그런데 수군 총사령관인 내호아가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고건무 장군(훗날 영류왕)이 거드린 고구려군의 매복에 크게 패하고 만다.
이때 을지문덕의 유명한 ‘여수장우중문시’(與隨將于仲文詩)가 수나라에게 전해진다.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다했도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원컨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결국 후퇴하는 수나라 군은 살수대첩에서 크게 패하고 30만 5천의 병력 중에 요동성까지 살아서 돌아간 자가 27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수나라에서는 “요동땅에 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수양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음해와 그 다음해 계속해서 고구려 원정을 시도하였다.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
- 1차 : 수문제 침략(598)
- 2차 : 수양제 침략(살수대첩, 612)
- 3차 : 수양제 침략(613)
- 4차 : 수양제 침략(614)
살수대첩(612)년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버린 을지문덕’...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에서는 을지문덕과 영양왕, 그리고 이름없는 요동성의 성주를 기억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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