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발발 20일만에 5월 3일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왜군이 입성한다. 선조는 한양에서 개경으로, 개경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육지에서 조선군이 삽질하고 있을 때, 수군은 달랐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1차 출정에서 옥포(5.7), 합포(5.7), 적진포(5.8)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2차 출정에서 사천(5.29), 당포(6.2), 당항포(6.5), 율포(6.7)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차 출정에서 조선의 함대는 피해가 없었으며 일본의 함대는 67척이 격침되었고, 조선군 13명이 사망한 반면 일본은 8~9,0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순신은 당시 사망한 조선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서 선조에게 올려보냈다. “이들은 모두 날아오는 화살과 총알을 무릅쓰고 ..
1592년 4월 13일에 전쟁 발발한 이후에 부산성에서 정발, 다대포성 윤흥신, 동래성의 송상현, 낙동강 방어선에서 박진이 분전하였으나 북상하는 왜군을 막지 못했고, 상주 전투에서 이일이 패하고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면서 임진왜란 개전된 지 20일만에 한양이 5월 3일에 점령을 당했다. 김명원이 한강 방어에 실패했고, 이후 임진강 방어에 나선 김명원과 한응인이 패하고, 평양성을 지키던 윤두수와 이원익이 패배하면서 선조는 일찌감치 의주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등장하여 1차 출정(옥포ㆍ합포ㆍ적진포 해전)과 2차 출정(사천ㆍ당포ㆍ당항포ㆍ율포 해전)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놓고 있었다. 이때 2차 출정의 당항포 해전(6월 5일)과 율포 해전(6월 6일)에서 수군이 승리하고 있을 무..
중국이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공정을 왜 계속하는가? 중국은 동북공정 이외에 서북공정과 서남공정도 있었다. 동북공정은 ‘지금의 중국에서 동북 3성이라고 부르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은 고대로부터 중국의 역사였다’라고 하는 주장이다. 서북공정은 중국에서 시끄러운 지역인 신장위구르 자치주 지역으로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 그 지역이 중국의 역사였다라는 주장이며, 서남공정은 티베트(인도에 망명한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티베트)의 역사가 고대부터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주장으로 국가차원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벌어졌던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것이 이러한 공정의 대전제이다. 중국이 이런 공정을 하는 이유 무엇일까? 중국은 공식적으로 56개 민족이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들 5..
1차 출정 때 옥포ㆍ합포ㆍ적진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2차 출정에서 노량에서 원균의 부대와(판옥선 3척) 합류해서 만나 5월 29일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고, 사량도에서 머문 후에 6월 2일 당포의 왜군 21척을 부수고 구루지마 미치유기1557~1592)를 죽이고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의 부채를 획득한다. 그리고 당포 근처에서 6월 4일에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함대와 만나게 된다. 전라우수영(25척), 전라좌수영(23척), 경상우수영(3척)의 연합함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 당시 이순신보다 16살이 어린 이억기는 이순신을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한다. 6월 2일, 당포해전 당시 후방에 나타났던 왜군이 거제도도 도망갔는데 정보에 의하면 그 왜군이 당항포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그..
2차 출정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면서 거북선의 활용가치를 확인한 이순신은 비록 부상을 입은 상태이지만, 당포에 21척의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당포로 향한다. 이순신은 당포 앞에 곤리도를 지나 몇 척의 판옥선을 매복시켜 놓았다. (행여 아래쪽에서 왜선이 나타나면 조선의 수군이 협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안을 타고 들어가서 몇 척의 판옥선을 근처에 매복시켜 놓고 곧장 남은 함선으로 당포에 정박해 있는 왜선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당포 바다가 수심이 깊기 때문) 당시 왜군 선단의 사령관은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로 알려져 있었고, 가메이 고레노리에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준 부채를 이때 이순신의 수군이 획득했기 때문에 조선은 이때 당포에 정박해 있던 적장이 가메이 ..
6월 3일에 이억기(전라우수영)가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는데, 5월 28일경 원균이 왜선 10여척에게 쫓겨서 노량 근처로 피신해 있다는 전갈을 받고 출정하기로 하였다. 이때 당시 전라좌수영의 고문격인 70대 후반의 정걸(1514~1597) 장군에게 거북선 1척과 판옥선 몇 척을 주어 전라좌수영 근처 해역을 지키도록 하고, 23척의 판옥선(아마도 거북선 2척을 포함)을 거느리고 노량 근처의 원균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노량에서 원균의 판옥선 3척과 합류한다. 당시 2차 출전 명부는 다음과 같다. “중위장에 순천부사 권준, 전부장에 방탑첨사 이순신, 중부장에 광양현감 어영담, 후부장에 홍양현감 배홍립, 좌부장에 신호, 우부장에 김득광, 좌척후장에 녹도만호 정운, 우척후장에 사도첨사 김완, 자별도장에 우후 이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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