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동이족이라는 것은 ‘예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숙신’을 동이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북경대 총장까지 지낸 부사년이라는 학자는 ‘숙신’을 ‘고조선의 다른 명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갈족의 후예가 만주족과 여진족인데, 이 말갈족의 선조를 숙신이라고도 한다. 나아가 거란족과 같은 민족도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이족은 커다란 민족의 개념으로 볼 수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황제 집단과 치우 집단이 싸우다가 (초기에는 치우 집단이 승리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황제 집단이 승리했으며, 그 치우 집단의 한 갈래를 동이족이라고 본다. 중국에 치우의 무덤이라고 하는 치우총이 여러 군데 있는데 ‘중화삼조당’(중국..
동이족에 대해서... 동이족이 뭐냐고 물어보면 선뜻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고대 역사서 중에 고대 4사(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진수가 쓴 삼국지와 후한서) 중에 삼국지와 후한서에 동이열전이라는 구분이 나온다. 동이열전 속에 부여, 고구려 같은 나라들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이 볼 때 ‘동이’는 우리의 부여, 고구려, 예, 읍루라든지... 이런 우리의 고대 국가들을 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중국의 ‘백도백과’라든지 중국의 사이트에서 ‘동이’를 찾아보면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던 고대 민족이다. (삼국지나 후한서 같은 고대 중국 역사서에서 말하는 동이는 부여, 고구려 등의 나라들인데) 지금..
일본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서둘러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왕을 잡게 되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일본의 100여년의 전국시대 전쟁의 패턴은 성주가 항복하거나, 할복하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다. (최후까지 항전하면 그 지역은 철저하게 도륙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백성들은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처음에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주가 도망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의 왕인 선조는 일본군의 허를 찔러 가장 용감하게 도망쳤다. (이것이 임진왜란에서 선조가 한 가장 뛰어난 활약이었다... 손자병법의 36계 줄행랑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가장 충격과 멘붕을 선사했다...) 선조가 도망친 이후에 일본군은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한양을 점령한 이후에 곧바로 북진하지 못한 것은 이순..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하여 (문명은 문화보다 조금 큰 개념으로) 요하문명은 지금의 하북성, 내몽골, 요녕성, 그것보다는 조금 더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쪽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신석기 문화부터 청동기 문화로 이어지는 고대 문명이다. 그리고 이 요하문명의 속에 홍산문화라는 작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홍산문화는 그 중의 한 문명으로 요하문명 속에 홍산문화라는 하나의 작은 문화가 요하문명의 한 틀을 이루고 있다. 요하문명은 서기전 8천년에 시작하는 신락문화부터 시작하는데, 홍산문화는 서기전 5천년 전에 시작하는 문화이다. 이 문화가 나중에 우리 고조선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기에 대단히 중요한 문명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내몽골에 가면 내몽골의 적봉이라는 도시가 있다. ‘적’자가 붉을 적(赤)자인..
지도에 등장하는 별표는 선조가 도망가면서 세운 임시 수도라고 할 수 있다. 부산성, 동래성을 함락하고 밀양을 지나 탄금대에서 신립을 격파한 제1선발 고니시 유키나가와 (추풍령에서) 합류한 제2선발 가토 기요마사는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1선발 고니시가 조선의 지리를 잘 아는 부하를 가토에게 제공해준다. 그런데 가토가 허를 찔러서 새벽에 먼저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뒤통수를 맞은 고니시는 기병만 데리고 한양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한양에서는 이미 탄금대에서 신립이 패한 직후에 선조는 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운두수 같은 관료들에게 이미 튈 준비를 하라고 해 놓고 모른척 하면서 조정 대신들과 회의를 하게 된다. 이때 파천을 주장하는 이산해(1539~1609)와 목숨걸고 싸우기를 주장..
[이덕일의 한국통사] 3세기 일본 천황가 발상지 사이토바루 고분군에서 김해 지역에서 나오는 가야 유물과 동일 북한학자 김석형 분국설로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임나일본부설 폐기돼야 #3 일본 식민사학의 주요 구조 중의 하나는 ‘임나일본부설’이다. 오늘날 남한의 강당사학자들은 겉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은 다 극복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임나일본부설의 요체는 ‘가야가 임나’라는 것이다. 노태돈이라는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라는 사람은 ‘왜의 세력이 가야에서 단기적으로 군사솰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는 아니었다’, ‘ 영역 지배는 없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외국의 군대가 다른 나라의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하는 것을 뭐라고 이해해야 하나? 외국군인 야먀토왜의 군사가 가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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