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 중국이라는 나라, 개념 탄생의 비밀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온 하화족이 생겨난 배경 중국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 중국인도 모르는 중국 고대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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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중국이라는 나라, 개념 탄생의 비밀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온 하화족이 생겨난 배경 중국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 중국인도 모르는 중국 고대사 #6

by [수호천사] 202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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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동이족이라는 것예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숙신을 동이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북경대 총장까지 지낸 부사년이라는 학자는 숙신고조선의 다른 명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갈족의 후예가 만주족과 여진족인데, 이 말갈족의 선조를 숙신이라고도 한다. 나아가 거란족과 같은 민족도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이족은 커다란 민족의 개념으로 볼 수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황제 집단과 치우 집단이 싸우다가 (초기에는 치우 집단이 승리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황제 집단이 승리했으며, 치우 집단의 한 갈래를 동이족이라고 본다. 중국에 치우의 무덤이라고 하는 치우총이 여러 군데 있는데 중화삼조당’(중국에서 치우의 목을 베서 묻었다는 곳)에서 우연히 치우 역사를 연구하는 중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치우 집단이 그 후에 한 집단은 산동성에 남았고, 한 집단은 북방으로 갔고, 한 집단은 남방으로 갔다고 한다. 이때 산동성에 남은 사람들이 나중에 하화족이 되었고, 북방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몽골과 만주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건너갔으며, 남방으로 간 사람들은 남방에 있는 백족과 묘족이 되었다고 한다. (남방에 답사를 갔다가 호텔에 복무하는 묘족 여자분에게 한국하고 같은 치우의 후손이란 것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안다고 대답했다)

 

동이족 후예들이 널리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청천 장군이 쓴 우등뿌리라는 자서전에 보면, 그분이 중국 운남의 군관학교를 나왔는데, 운남에 있을 때 백족이 인절미와 김치를 먹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기록도 살펴볼 수 있다. (민족의 DNA라는 것이 오늘날 BTS와 같은 한류 스타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의 DNA가 있어서 나온 것이라고 볼수 있다) [혹 이청천이 아니라 이범석이아닌가?]

 

중국의 치우 연구회 학자가 말한 것처럼 치우 집단 중에 북방으로 올라간 동이족이 중국의 삼국지나 후한서에서 말하는 동이열전에 나오는 사람들이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묘족과 백족이 되는 계보도 있는데, ‘샹그릴라라고 하는 중국의 히말라야 산맥 남쪽 지류의 무덤 형태들은 모두 다 적석총인 것을 볼 수 있다. [홍산문화 얘기할 때 도리이 류조가 적석총을 보고 이게 중국하고 다른 것이라고 말했던것을 기억하라]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의 이동 경로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렇다면 중국민족, 중화민족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의 역사는 전부 다 이족(夷族)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랑캐 이라고 말하는 건 아직도 우리가 남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나타낸다. “”()는 바로 우리를 뜻하는 건데 우리의 옥편이나 한자 사전은 여전히 오랑캐라고 나와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전인 『설문해자』에는 이(夷)를 ‘사람’이란 뜻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큰 사람’이라는 뜻이다. 큰 사람은 어질기 때문에, ‘인자이기 때문에, ‘인자의 나라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자는 처음부터 중국이 자기네를 하화족이라고 설정해 놓고 나서 다른 민족을 폄하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사람이란 뜻이고, 사람중에서도 큰 사람’, 그리고 어진 사람들이다이런 뜻으로 사용되던 것이 훗날 중국이 자기네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화족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이것은 가운데 중()자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이라고 할 때 가운데 중()의 시작은 중국이 하은주할 때 주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도가 낙양인데, (황하가 내려오다가 낙양 북쪽까지 흐름) 그 낙양과 황하를 하락’(河洛)이라고 부른다. ‘황하자와 낙양자를 따서 하락이라고 부른다. 별로 크지 않은 지역인데, 그 지역을 주나라 사람들이 ‘천하지중’(천하의 중심)이라고 해서 ‘우리가 중국이다’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주나라는 처음부터 하화족이 아니었다. 중국 사기에도 서이’(西夷)라고 언급한다. (오랑캐라는 의미가 아니라) ‘서쪽 민족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주나라가 약간 서쪽인 산서성쪽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고 은나라보다 서쪽에 있는 민족이기에 서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 아니라 다 같은 ‘이족’이라고 할 수 있다.

 

 

주나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천하지중’, ‘중국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사방의 민족들을 방위 개념으로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 같은 민족들이었다. 예를 들어 요즘도 어떤 집안이 같은 동네에서 자라다가 어떤 집안에서 왕이 나오고 판서가 나오면, ‘우리는 너희들하고 다르다라고 해서 계보를 만들고 족보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들이다.

 

주나라 때 중국이란 개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주나라 낙양을 중심으로 동이ㆍ서융ㆍ남만ㆍ북적의 개념을 만들긴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당시에도 사용이 되지는 않았다. 전국시대에도 통용이 안되었다. 주나라 주변이 다 이민족들이고, 주나라도 내부의 왕권다툼을 할 때 이족들을 끌어들여서 정권교체를 하고... 이러면서 뒤섞여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주나라가 만든 ‘하화족’이라는 개념이 나중에 공자가 춘추라는 역사서를 쓰면서 주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다. 춘추 이야기는 한 마디로 주나라를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춘추시대는 각 제후들이 주나라를 무시하고 서로가 합병하던 시절이고, 전쟁이 아주 일상화되어 있으니까, 전쟁을 멈추려면 주나라 왕실을 다시 추대하는 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인 것이다. 이것을 “춘추대의”라고 한다.

 

공자가 주나라를 중심으로 춘추라는 역사서를 썼고, 이것을 사마천이 조금 더 개념을 확대해서 오제의 황제부터 시작하는 (주나라 훨씬 윗대인 황제부터 시작하는) 하화족의 계보를 만들어서 그것이 사마천이 살았던 한나라까지 이어진 것으로 설명한 것이 중국이라는 개념의 확장인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중국인 것이다.

 

중국의 원 시작은 ‘서이’라고 불렸던 주나라 사람들이 주나라의 수도 낙양과 그 북쪽에 황하가 흐르는 ‘하락’ 지국을 천하의 중심(천하지중)이라고 하면서 중국이라고 불렀던 것이 중국의 탄생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자와 사마천을 거치면서 상당히 확대가 된 것이고, 진시황이 강역을 통일하고 한나라가 강역을 확장하면서 그 개념이 상당히 확장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여담으로 말하면 진시황의 진나라도 다 동이족 국가이다. 사기의 봉선서에 보면, 봉선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그런 계통을 적어놓은 책인데, 거기에 보면 진나라 왕실에서 소호에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진나라도 동이족 국가이기 때문에 진나라를 오랑캐로 몰기도 했던 것이다.]

 

중국은 통일국가가 들어서면 강역이 광대하니까 상당히 강한 왕권이 필요했다. 중국은 환관들이 난을 많이 일으켰다. 왜냐하면 황제하고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의 왕조는 대부분 정권을 잡게 되면 폭력으로 뒤엎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황제의 권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황제 곁에 있는 환관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래 왕권이 약한 나라이다. 왕권이 약한 나라들은 수명이 길다. 신하들이 (자기네가) 다하기 때문에 왕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만세일계라고 하는 데, 일본 천황이란 것은 그냥 국가 제사장이고 실제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니까 쇼군이 자기들이 통치하고 두태여 국가 제사장을 내쫓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국가 제사를 지내게 하고 ‘정치는 우리가 한다’고 하니까 일본은 천황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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