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에 대해서... 중국 시진핑이 미국의 트럼프를 만나서 옛날에 북한이 중국의 영토였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의 위치가 북한지역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위만조선의 위치, 낙랑군의 위치가 어딘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들이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낙랑군의 위치가 중국 하북성 일대라고 보고 있는데,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가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고대사에 관한 논쟁의 대부분은 제국주의 시절에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 논쟁들은 ‘고조선, 단군조선이 언제 건국했느냐’는 문제와 ‘고조선의 서쪽 강역, 즉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이 어디냐’는 문제,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
정문부 장군의 하이라이트는 북관대첩(1592.9~1593.2)인데 이 북관대첩은 정문부가 함경도를 수복하면서 승리한 여러 전투를 총칭한 명칭이다. “함경도의 적세는 다른 도보다 강합니다. 안변에서 육진까지 모두 왜장을 배치하고 각기 3~4백명의 군사를 주둔시켰으며, 또 민간에 사람을 내보내 필요한 물건들을 날마다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요해처에는 복병을 많이 배설하여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살육과 약탈이 끝이 없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모두 분발할 것을 생각하면서 애타게 중국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조수정실록』 길주 이북의 상황이 궁금한 일본군은 길주에서 최정예병력 92명을 경성 근처까지 보내보지만, 정문부가 92명을 다 잡아서 죽여버린다(경성전투, 1592.9.16). 장평(장..
가토가 함경도를 장악하고 여진족까지 공격했다가 패하고 길주까지 내려왔다가 가장 따뜻한 안변까지 내려가 있었다. 일본군과 왜군? 당시 사료에는 ‘왜군’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왜’(倭)는 일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고, 왜구(倭寇)는 일본의 해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일본(日本)은 7세기 중반 이후 사용된 왜(倭)의 국호(國號)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적을 ‘왜군’이나 ‘일본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함경도는 왜 반역의 땅이 되었을까? 원래 이성계는 함경도에 있는 군사력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단종 때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1453)이 발생하였고, 이때 김종서의 부하였던 6진의 책임자 이징옥(1399~1453)이 난을 일으켰다(1453). ..
함경도는 조선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면서 가장 차별받았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김종서 장군으로 하여금 함경도의 북쪽에 6진을 개척하도록 하였는데 오늘날의 부령, 회령, 종성, 은성, 경흥, 경원이다.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고 삼남지방의 주민들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썼다. 그렇게 해서 함경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과거에 낙방한 사람들이나 땅이 없는 소작인들, 노비들이 나름 혜택(?)을 받기 위해 함경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북쪽(4군과 6진)에 사는 사람들이 뿌리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1562~1611)가 함경도로 진출하였는데,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인 이혼은 도망쳐 버렸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15..
임진왜란이 시작되면서 1선발 고니시와 2선발 가토, 3선발 구로다가 한양으로 진격하였다. 그리고 고니시의 부대는 계속 북상해서 평양까지 진격하였고, 2선발 가토는 함경도 쪽으로, 4선발 시마즈는 강원도 쪽으로 향하였다. 평안북도의 북쪽 지역과 전라도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조선은 이순신이 옥포(1592.5.7), 합포(1592.5.7), 적진포(1592.5.8)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차 출정에서 사천(1592.5.29), 당포(1592.6.2), 당항포(1592.6.5), 율포(1592.6.7)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7월 8일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남해와 서해바다의 제해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웅치(1592.7.7)와 이치(1592.7.8)에서 황진 장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전라도를 구해냈..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초반에는 조선이 어처구니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7월에 웅치ㆍ이치에서 황진 장군에 의해 호남이 지켜지게 되고,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대첩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의 수륙병진작전에 차질이 생겼으며, 전쟁의 양상이 일본 입장에서는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선의 대반격이 시작된다.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해전(1592.9.1)에서 적의 본진인 부산포를 작살냈고, 같은 9월 1일에 연안성을 이정암 장군이 지켜냄으로 인해서 황해도 서쪽의 연백평야가 지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9월 8일에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박진이 경주성을 탈환해버렸다. 9월 하순경 함경도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정문부 등의 공격으로 철수하게 된다. 명나라가 참전하기 전부터 조선이 스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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