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충청도 병마사, 전라도 병마사로 가 있던 원균은 자신이라면 부산을 공격할 것이라는 장계를 올린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2일 “다만 수륙의 일을 헤아려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위무는 오로지 수군에 달려 있습니다. 신이 어리석은 생각에는 수백 명의 수군으로 영등포 앞으로 나가 몰래 가덕도 뒤에 주둔하면서 경선을 가려 뽑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절영도 밖에서 무위를 펼치고, 1백 여 명이나 2백명 씩 대해에서 위세를 떨치면, 청정은 평소 수전이 불리한 것에 겁을 먹고 있었으니,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하건데 조정에서 수군으로써 바다 밖에서 맞아 공격해 적으로 하여금 상륙하지 못하게 한다면 반드시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이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이번 영상은 아마도 고구마를 몇 개 먹는 느낌일 것이다... 미리 각오하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이순신이 없었으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왕은 도망자였고, 백성까지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까지 생각한 자였다. 그런데 자신보다 백성을 더 끔찍이 여겼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보다 더 백성들에게 신망을 더 받고 있는 장수가 등장했다(이순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왕 선조가 이순신에게 시기 질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순신이 1593년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고, 무모한 출전명령을 장문포에서 왜선 2척을 격침시킨다. 그런데 이때부터 원균과의 사이가 노골적으로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선조실록 1594년 8월 21일 상이 이르기를 “이순신이 ..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왜 부산을 공격하지 않았는가? 일단 전염병으로 병력의 손실이 컸다. 아마도 6~7천으로 줄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남쪽에 일본군 4만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성을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까지 진격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이순신은 선제공격 대신에 한산도를 지키고 있으면 더이상 일본이 한산도 서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선조는 조급했다. 이런 조급증의 선조를 부추긴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윤두수였다. 도체찰사 윤두수(1533~1601)가 선조에게 왜성을 선제공격하자는 건의를 강하게 한다. 유성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윤두수 편을 들었고, 선조는 육군과 수군이 연합해서 왜성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에 사실상 4년간의 휴전에 돌입하게 된다. 명나라의 입장에서 그동안 사대를 했던 조선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일단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선에 참전했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평양과 한양을 탈환했는데 그 와중에 일본군의 조총의 위력을 경험하고 되도록 더 이상 싸우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말들이 역병에 걸리게 되어서 12,000필의 말이 죽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졸지에 요동 기병이 요동 보병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군의 입장에서도 역시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임난 초기에 한양까지는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지만 평양까지 점령한 이후에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양성을 후퇴한 이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
임진왜란 시기 구분 1기 - 임진왜란 : 1592.4~1593.6 [부산성전투에서 제2차 진주성전투까지] 2기 - 휴전기 : 1593.6~1597.7 3기 - 정유재란 : 1597.7~1598.11 [칠천량해전에서 노량해전까지] 이순신 장군은 휴전기인 1593년 7월에 본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진주성이 일본의 손에 넘어간 후에 육지로 여수 본영이 공격당할 것이 우려되었나?) 난중일기에 보면 5월부터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었다. 이순신은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7월 2일. 맑다. 늦게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보았다. 선전관은 오후에 돌아갔다. 날이 저물녘에 김득룡이 와서 진양(진주)이 함락되었다고 전하며 “황명보, 최경회, 서예원, 김천일, 이종인, 김준민이 죽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일본군 9만 7천명이 성을 공격했지만 8일째까지 막아낸 전투이다. 8일째 되는 날에 황진 장군이 시체더미에 숨어 있는 일본군 저격병에 의해 총알이 왼쪽 이마에 꽂히고 전사하게 된다. 다음날 적이 또 동쪽과 북쪽의 성을 침범하여 크게 전투가 벌어졌는데, 종인이 다시 크게 싸워 물리쳤다. 황진에 순행차 이곳에 이르렀다 성 아래를 굽어보고 말하기를, “적의 시체가 참호에 가득하니 죽은 자가 거의 1천여 명은 되겠다.” 하였다. 그런데 이때 적 한 명이 성 아래에 잠복해 있다가 위를 향해 철환을 쏘았는데, 판순을 뚫고 진의 이마에 맞아 진이 즉사하였다. 황진은 용략이 여러 장수들 가운데 으뜸이었으므로 성 안에서는 그를 의지하였었는데, 그가 죽자 성안이 흉흉해지며 두려워하였다. 『선조수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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