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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31] 정문부의 함경도 순왜 척결과 6진 회복(선무1등공신 누구여야?)│황현필 한국사 가토가 함경도를 장악하고 여진족까지 공격했다가 패하고 길주까지 내려왔다가 가장 따뜻한 안변까지 내려가 있었다. 일본군과 왜군? 당시 사료에는 ‘왜군’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왜’(倭)는 일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고, 왜구(倭寇)는 일본의 해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일본(日本)은 7세기 중반 이후 사용된 왜(倭)의 국호(國號)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적을 ‘왜군’이나 ‘일본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함경도는 왜 반역의 땅이 되었을까? 원래 이성계는 함경도에 있는 군사력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단종 때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1453)이 발생하였고, 이때 김종서의 부하였던 6진의 책임자 이징옥(1399~1453)이 난을 일으켰다(1453). .. 2021. 4. 21.
[임진왜란30] 가토(가등청정)의 함경도 점령과 여진족 공격, 그리고 새로운 영웅의 등장 │황현필 한국사 함경도는 조선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면서 가장 차별받았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김종서 장군으로 하여금 함경도의 북쪽에 6진을 개척하도록 하였는데 오늘날의 부령, 회령, 종성, 은성, 경흥, 경원이다.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고 삼남지방의 주민들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썼다. 그렇게 해서 함경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과거에 낙방한 사람들이나 땅이 없는 소작인들, 노비들이 나름 혜택(?)을 받기 위해 함경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북쪽(4군과 6진)에 사는 사람들이 뿌리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1562~1611)가 함경도로 진출하였는데,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인 이혼은 도망쳐 버렸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15.. 2021. 4. 18.
[임진왜란 29] 진 주 대 첩 (feat.김시민 - 30분울컥순삭ver.) │황현필 한국사 임진왜란이 시작되면서 1선발 고니시와 2선발 가토, 3선발 구로다가 한양으로 진격하였다. 그리고 고니시의 부대는 계속 북상해서 평양까지 진격하였고, 2선발 가토는 함경도 쪽으로, 4선발 시마즈는 강원도 쪽으로 향하였다. 평안북도의 북쪽 지역과 전라도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조선은 이순신이 옥포(1592.5.7), 합포(1592.5.7), 적진포(1592.5.8)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차 출정에서 사천(1592.5.29), 당포(1592.6.2), 당항포(1592.6.5), 율포(1592.6.7)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7월 8일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남해와 서해바다의 제해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웅치(1592.7.7)와 이치(1592.7.8)에서 황진 장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전라도를 구해냈.. 2021. 4. 18.
[임진왜란 28] 9월대반격 - 박진의 경주성 탈환(feat.비격진천뢰&사야가)│황현필 한국사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초반에는 조선이 어처구니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7월에 웅치ㆍ이치에서 황진 장군에 의해 호남이 지켜지게 되고,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대첩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의 수륙병진작전에 차질이 생겼으며, 전쟁의 양상이 일본 입장에서는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선의 대반격이 시작된다.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해전(1592.9.1)에서 적의 본진인 부산포를 작살냈고, 같은 9월 1일에 연안성을 이정암 장군이 지켜냄으로 인해서 황해도 서쪽의 연백평야가 지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9월 8일에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박진이 경주성을 탈환해버렸다. 9월 하순경 함경도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정문부 등의 공격으로 철수하게 된다. 명나라가 참전하기 전부터 조선이 스스로 .. 2021. 4. 18.
[임진왜란 27] 공성전 승리 - 영천성 전투(적을 전멸시키다.) │황현필 한국사 1592년 9월 1일에 이순신이 적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포를 작살냈으며, 같은 날 황해도 연안성에서 이정암 장군(1541~1600)이 일본의 3번대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를 막아냈다. 며칠 뒤인 9월 8일 혹은 9일에 경주성을 박진 장군(1560~1597)이 탈환하려는 이야기 하기 전에 7월에 경주성의 옆에 있는 영천성을 권응수 장군(1546~1608)이 탈환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 임진왜란 조선 3대 장수를 선정하라고 하면, 황진(1550~1593), 권응수(1546~1608), 정기룡(1562~1622)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권응수는 선무 2등공신에 선정될 정도의 활약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에 경상도가 초토화 되었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경상좌수사 박홍의 .. 2021. 4. 17.
[임진왜란 26] 임진년 9월 대반격의 서막 - 이정암의 연안성 전투 │황현필 한국사 훗날 광해군은 연안성 전투를 임진왜란사의 ‘안시성전투’라고 표현하였는데, 연안성 전투에서의 승리한 사람은 의병장 이정암(1541~1600)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문무관료들이 공신을 책정하였는데, 선조와 함께 도망다녔던 신하들을 높여서 왕을 호위한 ‘호성공신’으로 86명을 책정하였고, 전쟁을 수행했던 영웅들을 ‘선무공신’으로 18명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선무공신에 ‘박진’, ‘황진’, ‘정기룡’ 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선무 1등공신은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원균(?)이었다. 2등공신에 진주대첩의 ‘김시민’, 그리고 전라우수영으로 이순신과 함께 많은 공을 세운 ‘이억기’, 그리고 연안성 전투의 ‘이정암’이 선정되었다. 이정암은 의병장이지만 원래 문신관료 출신이었다. 당시 참의(.. 2021. 4. 17.
[임진왜란25] 부산포해전 - 이순신의 최대승리... 그러나...꼭 끝까지 보셔야할 영상!!! │황현필 한국사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세 차례 출정해서 9번을 완벽하게 승리한 이순신 장군 덕분에 가덕도와 거제도의 서쪽으로는 왜군이 감히 넘어올 엄두를 못하게 되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수군과의 교전을 금하고 도망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당시 이순신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일본의 육군이 전라도를 통과하여 전라좌수영(여수)로 진격하면 수군으로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전라도로 왜군이 진격하는 것이었다. 이때 전라도를 공격하려는 고바야카와가 웅치와 이치에서 황진 장군에게 막혔고, 근거지였던 금산을 고경명과 조헌, 영규가 공격하는 바람에 마음놓고 전라도로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왜군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격을 시도하는 것은 경상도 의병장인 정인홍, 김면, 곽재우의 활약으로 막히게 되.. 2021. 4. 17.
[임진왜란 24] 의병장 총집합 -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 조헌, 정문부, 서산대사, 사명당...그리고 김덕령 │황현필 한국사 이순신은 5월부터 7월까지 총 3번 출정한다. 1차 출정에서 옥포(5.7), 합포(5.7), 적진포(5.8)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차 출정 때 사천(5.29), 당포(6.2), 당항포(6.5), 율포(6.7)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3차 출정에서는 한산도(7.8), 안골포(7.10)에서 승리하면서 완전히 해상을 장악해 버렸다. 왜군은 육지를 통해 호남을 공략하려고 했으나 웅치(7.7)와 이치(7.8)에서 황진 장군의 영웅적 활약으로 물러나면서 호남이 지켜졌다. 이순신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호남을 지키기 위해서 호남만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충청도와 경상도의 여러 의병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초창기에 일본이 압도적인 승리.. 2021. 4. 17.
[임진왜란23] 호남방어전(웅치.이치전투), 육전 최고의 승리? 영웅 이름? 4대대첩으로 바뀌어야 │황현필 한국사 조선이 일본에게 멸망당하지 않았던 전투는 무엇일까? 임진왜란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웅치전투(1592.7.7)와 이치전투(1592.7.8?)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만약 황진(1550~1593)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임진왜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왜군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는데 왕이 도망치고 없었다. (이것이 왜군에게는 멘붕이었다고 한다) 이후 누가 왕을 잡으러 갈 것인가를 놓고 제비를 뽑았는데 고니시가 이겨서 고니시가 선조를 추격하기로 하고, 가토는 함경도쪽으로 가기로 했다. (가토는 함경도에서 선조의 아들 임해군을 잡기도 했다) 4군단 시마즈 요시히로(1535~1619)는 강원도로 진격했고, 3군단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는 충청도를 .. 2021. 4. 16.
[임진왜란22] 안골포해전 - 쥐구멍에 숨으셨어요? │황현필 한국사 이순신 장군의 3차 출정은 7월 6일 여수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7월 8일에 한산도대첩에서 일본의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혼내주었다. 오늘날에는 한산도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견내량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순신은 이때 『견내량파왜병장』이라는 장계를 올렸다. 유성룡의 『징비록』 중에 일본의 장수 고니시는 도망치는 선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수군 10만이 서해로부터 오게 되는데 대왕의 행차는 어디로 가십니까?” 이것은 이제 곧 일본의 수군이 서해로 올라와서 수륙병진작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산도대첩으로 일본의 수군이 서해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에서 발이 묶이게 되었고, 더이상 북상하지 못하게 된다. 솔직히 이순신이 .. 202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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