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9월 1일에 이순신이 적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포를 작살냈으며, 같은 날 황해도 연안성에서 이정암 장군(1541~1600)이 일본의 3번대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를 막아냈다. 며칠 뒤인 9월 8일 혹은 9일에 경주성을 박진 장군(1560~1597)이 탈환하려는 이야기 하기 전에 7월에 경주성의 옆에 있는 영천성을 권응수 장군(1546~1608)이 탈환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
임진왜란 조선 3대 장수를 선정하라고 하면, 황진(1550~1593), 권응수(1546~1608), 정기룡(1562~1622)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권응수는 선무 2등공신에 선정될 정도의 활약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에 경상도가 초토화 되었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경상좌수사 박홍의 무능함은 말할 것도 없고 경상좌병사 이각(?~1592)은 동래성전투에서 도망쳤다가 임진강 근처에서 잡혀서 조선군에 의해서 목이 잘리게 된다. 당시 박진(1560~1596)은 밀양부사였는데, 몇 번의 전투에서 비록 패하지만 부하들을 생존시키면서 왜군을 괴롭혔다. 박진은 참수당한 이각의 뒤를 이어 경상좌병사가 된다. 권응수는 원래 경상좌수사 박홍의 부하였는데, 박홍이 판옥선을 수장시키고 육지로 도망치는 것에 실망하고 박홍을 떠나(탈영?) 고향 영천에 가서 의병을 2천명까지 모았다. 이때 박진이 경상좌병사로 오면서 권응수를 불러 함께 하게 된다.
만약 당시에 경상좌수사에 이순신, 경상우수사 이억이가 있었다면 임진왜란은 시작도 되기 전에 왜군이 바다에서 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경상도의 수군을 담당했던 경상우수사 원균은 판옥선을 수장시키고 이순신에게 튀었고, 경상좌수사 박홍은 판옥선을 수장시키고 육지로 튀면서 일본의 대군이 부산에 상륙하게 만들었다.
경상도가 비록 초토화 되었지만 나름 의병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경상좌도에 김면, 정인홍,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켰고, 경상우도에는 정세아(1535~1612), 권응수(1546~1608), 최진립(1566~1636)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경상도의 의병들은 영천을 공격 목표로 정했다. 영천의 오른쪽이 경주이고, 왼쪽이 대구였기 때문에 나름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그리고 영천성의 주민들이 내통해 주었고, 영천성의 성벽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당시 영천성에는 천명의 왜군이 있었는데, 영천을 공격하기 위해서 의병 4천명이 모였다. 당시 의병들은 박진에게 4천 의병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고 박진은 권응수를 그들에게 보냈다.
권응수는 일단 의병의 군율을 엄격하게 하고 지휘계통을 철저하게 하였다. 당시 권응수의 군율은 다음과 같았다.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하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적을 만났을 때 다섯 걸음 이상 물러나는 자도 목을 벤다. 맡은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여 장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도 목을 벤다. 적과 싸우는 중 대열을 벗어나는 자도 목을 벤다.”
의병 4천명이 영천성을 공격했는데, 일단 왜군은 이틀 정도는 버텼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새벽에 몰래 영천성 아래 금호강에서 물을 떠서 가려다가 조선군에게 걸려서 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조선군은 영천성 안에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성이 점령당하는 그날에 바람이 몹시불었다고 한다. 조선군이 화살을 쏘는 데도 힘들었지만 조총에 화약을 넣는 것도 쉽지 쉽지 않았다. 성벽을 오르는 조선군에게 조총을 쏘지 못하고 총을 휘둘러 저항하는 모습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조선군은 영천성의 성문을 폭파시켰다. 성문이 뚫렸지만 백병전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던 조선군이 주저하고 있을 때, 권응수가 말을 타고 도끼를 휘두르며 돌격하였고, 조선군이 뒤따라 들어갔다. 천여명의 일본군 중에 살아서 경주나 대구로 도망친 자가 몇십명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전멸시킨 것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수급만 517구를 베어냈는데, 불타 죽어서 수급을 벨 수 없는 일본군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날의 전투에서 200필의 말과 조총 수백정을 획득하기도 했다.
“당시 왜적 1천여 명이 영천성에 주둔하여 안동에 주둔한 적과 서로 응하여 일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영천의 사민이 여러 곳에 주둔한 의병과 연결하여 공격하기 위해 박진에게 원조를 요청하여 박진이 별장인 주부 권응수를 보내어 거느리고 진군하여 공격하였다. (중략) 이에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아 별장 정천뢰 등과 함께 진군하여 영천성에 이르니 적이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권응수가 군사를 합쳐 포위하고 성문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권응수가 큰 도끼를 가지고 먼저 들어가 적을 찍어 넘기니 여러 군사들이 용약하여 북을 올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였다.”
“권응수는 용맹스러운 장수로 과감히 싸우는 것을 여러 장수들이 따르지 못하였다.”
『선조수정실록』 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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