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3차 출정은 7월 6일 여수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7월 8일에 한산도대첩에서 일본의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혼내주었다. 오늘날에는 한산도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견내량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순신은 이때 『견내량파왜병장』이라는 장계를 올렸다.
유성룡의 『징비록』 중에 일본의 장수 고니시는 도망치는 선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수군 10만이 서해로부터 오게 되는데 대왕의 행차는 어디로 가십니까?”
이것은 이제 곧 일본의 수군이 서해로 올라와서 수륙병진작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산도대첩으로 일본의 수군이 서해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에서 발이 묶이게 되었고, 더이상 북상하지 못하게 된다. 솔직히 이순신이 선조를 살린 것이다.
한산도대첩 당시에 와키자카의 본대가 이순신의 수군에게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미처 본대를 따라잡지 못한 후방의 함대는 와키자카를 돕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뒤로 도망쳐서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와 합류하게 된다. 도망친 14척의 배와 합류한 구키 요시타카는 이순신과 맞짱뜨는 것을 포기하고 전의를 상실한 자신의 수군(약 40여척)을 데리고 안골포 포구로 숨어들었다.
이순신의 수군은 견내량을 통과하여 7월 8이에 가조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7월 9일에 철천도에서 숙박을 한 후에, 다음날 새벽 2시에 안골포로 향한다. 칠천도에서 안골포까지는 약 25km였는데, 아침에 안골포 앞바다에 이순신의 수군이 도착하게 된다.
7월 10일 아침, 이순신은 혹시 왜군이 후방에서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억기의 함대를 가덕도에 매복시켜놓고 원균과 함께 안골포를 공격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왜군은 애초에 부산에 70여 척의 왜선이 있었는데, 구키 요시타카가 70척을 본국에서 가지고 와서 총 140척이었다. 여기에서 와키자카가 73척을 가지고 돌격을 했다가 59척을 수장시켰고 14척이 남아서 도망쳤기 때문에 아직 80여 척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골포는 썰물 때 갯벌이 되기 때문에 공격이 불가능하고, 오직 밀물 때만 공격이 가능했는데 밀물시간은 오전 9시와 오후 3시이기 때문에 이순신은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공격하거나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공격해야 했다.
구키 요시타카는 안골포에 자신의 전함을 정박시켜놓고 육지에는 포를 장착시켜 놓았다. 그리고 안골포에는 방파제까지 있어서 섯불리 이순신의 함대가 들어가기에는 무리였다. 이때 이순신은 판옥선 2척을 방파제 안으로 들여보내서 적의 사정거리 전까지 들어가서 천자총통으로 공격하였다. 두 척이 천자총통을 쏘고 물러나면 다시 두 척이 들어가서 천자총통을 쏘아대면서 2시간을 공격한 이순신은 썰물 때 물러났다가 다시 오후 2시에 밀물이 시작되면서 다시 천자총통 놀이를 계속했다. 이때 이순신은 천자총통에 2미터 길이의 대장군전을 장착해서 쏘아댔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화포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다고 한다. 고려말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만들어서 화약을 제조하였고, 세종 시절에 화포는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때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을 만들었고, 명종때 개량되어 더 업그레이드 되었을 것이며,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은 임진왜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조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순신의 천자총통 놀이로 구키 요시타카의 20여척의 배가 부서졌으며, 다음날 새벽에 구키 요시타카의 남은 20여척이 몰래 안골포를 빠져나가 도망쳐 버렸다. 이때 구키 요시타카는 ‘대장군전’을 가지고 도망쳤다. 아마도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나름 패배할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증거를 가지고 간 것으로 보인다. (이걸 전리품이라고 해야 하나?)
7월 10일 안골포해전이 끝나고 7월 11일에 주변의 바다를 둘러보았으나 이미 왜선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순신의 함대는 7월 12일 가조도에 머물렀다가 견내량을 거쳐 여수로 회군한다. (이때 도중에 한산도를 지날 때 4일 전에 한산도대첩 때 살아남은 왜적이 무인도에서 굶고있는 상태였고 이들을 발견하고 포작선이 접근해서 화살로 그들을 사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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