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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21] 한산도 대첩(이순신이 그들에게 겸손과 두려움을 알게하다) │황현필 한국사 1592년 임진왜란 발발 20일만에 5월 3일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왜군이 입성한다. 선조는 한양에서 개경으로, 개경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육지에서 조선군이 삽질하고 있을 때, 수군은 달랐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1차 출정에서 옥포(5.7), 합포(5.7), 적진포(5.8)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2차 출정에서 사천(5.29), 당포(6.2), 당항포(6.5), 율포(6.7)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차 출정에서 조선의 함대는 피해가 없었으며 일본의 함대는 67척이 격침되었고, 조선군 13명이 사망한 반면 일본은 8~9,0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순신은 당시 사망한 조선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서 선조에게 올려보냈다. “이들은 모두 날아오는 화살과 총알을 무릅쓰고 .. 2021. 4. 13.
[임진왜란20] 역사상 최악, 용인 전투 │황현필 한국사 1592년 4월 13일에 전쟁 발발한 이후에 부산성에서 정발, 다대포성 윤흥신, 동래성의 송상현, 낙동강 방어선에서 박진이 분전하였으나 북상하는 왜군을 막지 못했고, 상주 전투에서 이일이 패하고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면서 임진왜란 개전된 지 20일만에 한양이 5월 3일에 점령을 당했다. 김명원이 한강 방어에 실패했고, 이후 임진강 방어에 나선 김명원과 한응인이 패하고, 평양성을 지키던 윤두수와 이원익이 패배하면서 선조는 일찌감치 의주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등장하여 1차 출정(옥포ㆍ합포ㆍ적진포 해전)과 2차 출정(사천ㆍ당포ㆍ당항포ㆍ율포 해전)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놓고 있었다. 이때 2차 출정의 당항포 해전(6월 5일)과 율포 해전(6월 6일)에서 수군이 승리하고 있을 무.. 2021. 4. 12.
[이덕일의 한국통사] 중국의 역사 공정 5종류, 역사 공정하는 이유 동이족 국가 은나라 유물 발견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상나라역사 사맹화로 국민들 무지하게 만드는 풍토 #7 중국이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공정을 왜 계속하는가? 중국은 동북공정 이외에 서북공정과 서남공정도 있었다. 동북공정은 ‘지금의 중국에서 동북 3성이라고 부르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은 고대로부터 중국의 역사였다’라고 하는 주장이다. 서북공정은 중국에서 시끄러운 지역인 신장위구르 자치주 지역으로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 그 지역이 중국의 역사였다라는 주장이며, 서남공정은 티베트(인도에 망명한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티베트)의 역사가 고대부터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주장으로 국가차원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벌어졌던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것이 이러한 공정의 대전제이다. 중국이 이런 공정을 하는 이유 무엇일까? 중국은 공식적으로 56개 민족이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들 5.. 2021. 4. 11.
[임진왜란19] 당항포에서 당황하셨어요? 너네들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순신이... │황현필 한국사 1차 출정 때 옥포ㆍ합포ㆍ적진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2차 출정에서 노량에서 원균의 부대와(판옥선 3척) 합류해서 만나 5월 29일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고, 사량도에서 머문 후에 6월 2일 당포의 왜군 21척을 부수고 구루지마 미치유기1557~1592)를 죽이고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의 부채를 획득한다. 그리고 당포 근처에서 6월 4일에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함대와 만나게 된다. 전라우수영(25척), 전라좌수영(23척), 경상우수영(3척)의 연합함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 당시 이순신보다 16살이 어린 이억기는 이순신을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한다. 6월 2일, 당포해전 당시 후방에 나타났던 왜군이 거제도도 도망갔는데 정보에 의하면 그 왜군이 당항포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그.. 2021. 4. 11.
[임진왜란18] 당포해전(바다에서 전라우수영을 만났을때),12분 초순삭ver. │황현필 한국사 2차 출정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면서 거북선의 활용가치를 확인한 이순신은 비록 부상을 입은 상태이지만, 당포에 21척의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당포로 향한다. 이순신은 당포 앞에 곤리도를 지나 몇 척의 판옥선을 매복시켜 놓았다. (행여 아래쪽에서 왜선이 나타나면 조선의 수군이 협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안을 타고 들어가서 몇 척의 판옥선을 근처에 매복시켜 놓고 곧장 남은 함선으로 당포에 정박해 있는 왜선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당포 바다가 수심이 깊기 때문) 당시 왜군 선단의 사령관은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로 알려져 있었고, 가메이 고레노리에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준 부채를 이때 이순신의 수군이 획득했기 때문에 조선은 이때 당포에 정박해 있던 적장이 가메이 .. 2021. 4. 11.
[임진왜란17] 사천해전(과연 거북선은 제 역할을 할것인가?) │황현필 한국사 6월 3일에 이억기(전라우수영)가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는데, 5월 28일경 원균이 왜선 10여척에게 쫓겨서 노량 근처로 피신해 있다는 전갈을 받고 출정하기로 하였다. 이때 당시 전라좌수영의 고문격인 70대 후반의 정걸(1514~1597) 장군에게 거북선 1척과 판옥선 몇 척을 주어 전라좌수영 근처 해역을 지키도록 하고, 23척의 판옥선(아마도 거북선 2척을 포함)을 거느리고 노량 근처의 원균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노량에서 원균의 판옥선 3척과 합류한다. 당시 2차 출전 명부는 다음과 같다. “중위장에 순천부사 권준, 전부장에 방탑첨사 이순신, 중부장에 광양현감 어영담, 후부장에 홍양현감 배홍립, 좌부장에 신호, 우부장에 김득광, 좌척후장에 녹도만호 정운, 우척후장에 사도첨사 김완, 자별도장에 우후 이몽구.. 2021. 4. 11.
[임진왜란16] 히데요시의 분노와 이순신의 잠 못드는 밤 │황현필 한국사 최근 원균에 대한 재평가를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원균이 과연 유능한 장군이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균은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인 것 같다) 임진왜란 전에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지역에서 군량미를 조달하고 각 진영을 조율하는 초유사로 임명된다. 이때 김성일은 이렇게 보고한다. “도내에 감사가 없으니 모든 적변을 당연히 신이 아뢰어야 합니다. 신이 도내에 있으면서 여러 성이 함락된 사유와 여러 장수들이 패전한 상황을 목격하였는데, 말하는 자는 모두 ‘군졸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적과 대진하지 무너져 흩어졌기 때문에 장수가 속수 무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좌수사 박홍은 화살 한 개도 쏘지 않고.. 2021. 4. 10.
[임진왜란15] 조선에 이순신이 있음을 알게하다(1차출정-옥포.합포.적진포해전) │황현필 한국사 조선의 수군은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다. 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펼친다. 왕의 입장에서 전라도의 오른쪽이 오늘날 전라도의 서쪽이 되고(전라우수영), 왼쪽은 전라도의 동쪽이다(전라좌수영). 마찬가지로 경상우수영은 경상도의 서쪽, 경상좌수영은 경상도의 동쪽이다. 가장 규모가 적은 곳이 ‘전라좌수영’이다. 전라좌수영은 5관 5포로 구성되어 있다. 관할지역에 ‘관’이라 함은 ‘고을’이라고 할 수 있고, ‘포’는 ‘포구ㆍ항만ㆍ기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1591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수시로 5관 5포를 순시하여 전쟁준비가 잘된 고을은 칭찬하고 격려하고 전쟁준비가 덜된 고을은 지적질해서 개선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배는 1555년 을묘왜변까지 ‘맹선’이 사용되었다... 2021. 4. 10.
[임진왜란14] '녹둔도 전투'(이순신 장군의 역사무대 데뷔전) │황현필 한국사 녹둔도 전투(1587)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의 삼각주 같은 섬으로 여의도의 두 배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섬이다. 이 녹둔도는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영토가 되어버렸다. 1860년에 애로호 사건(1856년) 때문에 청나라와 영국ㆍ프랑스 연합군이 싸우는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에서 청나라가 패했을 때,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해서 화해를 시켜주게 되었고,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인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에서 엄청난 이권을 빼앗아가게 된다. 이때 전쟁을 끝내게 해준 댓가로 러시아는 청에게서 연해주를 할양받게 된다. 이때 녹둔도도 함께 러시아 영토가 되어버렸다. 1883년에 서북경략사 어윤중(1848~1896)이 간도를 둘러보고 1884년에 고종에게 “녹둔도에는 8백명이 넘은 주민들이 살고 .. 2021. 4. 8.
[임진왜란13] 관료 이순신(전라좌수사 전까지) │황현필 한국사 32세에 무과에 합격한 이순신(32세)은 그해 함경도 삼수고을 동구비보 권관(종9품)이라는 말단 관직으로 가게 되는데 함경도 감사 이후백이 활쏘기 시합을 했을 때 활을 잘 쏘아서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35세, 어릴 때 살았던 훈련원봉사(종8품)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전랑’은 ‘정랑’과 ‘좌랑’으로 구분되는데 ‘인사권’을 담당하고 있었다. (병조정랑이라고 하면 쉽게 말해서 군대의 인사권을 관리하는 직책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병조정랑인 서익(5품)이 이순신에게 부당 인사를 청탁하였으나 이순신이 거부한다. (나중에 서익이 이순신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당시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신의 서녀를 이순신에게 첩으로 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35세 때 충청병사 군관을 역임하였는..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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