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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1676

[임진왜란19] 당항포에서 당황하셨어요? 너네들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순신이... │황현필 한국사 1차 출정 때 옥포ㆍ합포ㆍ적진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2차 출정에서 노량에서 원균의 부대와(판옥선 3척) 합류해서 만나 5월 29일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고, 사량도에서 머문 후에 6월 2일 당포의 왜군 21척을 부수고 구루지마 미치유기1557~1592)를 죽이고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의 부채를 획득한다. 그리고 당포 근처에서 6월 4일에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함대와 만나게 된다. 전라우수영(25척), 전라좌수영(23척), 경상우수영(3척)의 연합함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 당시 이순신보다 16살이 어린 이억기는 이순신을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한다. 6월 2일, 당포해전 당시 후방에 나타났던 왜군이 거제도도 도망갔는데 정보에 의하면 그 왜군이 당항포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그.. 2021. 4. 11.
[임진왜란18] 당포해전(바다에서 전라우수영을 만났을때),12분 초순삭ver. │황현필 한국사 2차 출정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작살내면서 거북선의 활용가치를 확인한 이순신은 비록 부상을 입은 상태이지만, 당포에 21척의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당포로 향한다. 이순신은 당포 앞에 곤리도를 지나 몇 척의 판옥선을 매복시켜 놓았다. (행여 아래쪽에서 왜선이 나타나면 조선의 수군이 협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안을 타고 들어가서 몇 척의 판옥선을 근처에 매복시켜 놓고 곧장 남은 함선으로 당포에 정박해 있는 왜선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당포 바다가 수심이 깊기 때문) 당시 왜군 선단의 사령관은 가메이 고레노리(1557~1612)로 알려져 있었고, 가메이 고레노리에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준 부채를 이때 이순신의 수군이 획득했기 때문에 조선은 이때 당포에 정박해 있던 적장이 가메이 .. 2021. 4. 11.
[임진왜란17] 사천해전(과연 거북선은 제 역할을 할것인가?) │황현필 한국사 6월 3일에 이억기(전라우수영)가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는데, 5월 28일경 원균이 왜선 10여척에게 쫓겨서 노량 근처로 피신해 있다는 전갈을 받고 출정하기로 하였다. 이때 당시 전라좌수영의 고문격인 70대 후반의 정걸(1514~1597) 장군에게 거북선 1척과 판옥선 몇 척을 주어 전라좌수영 근처 해역을 지키도록 하고, 23척의 판옥선(아마도 거북선 2척을 포함)을 거느리고 노량 근처의 원균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노량에서 원균의 판옥선 3척과 합류한다. 당시 2차 출전 명부는 다음과 같다. “중위장에 순천부사 권준, 전부장에 방탑첨사 이순신, 중부장에 광양현감 어영담, 후부장에 홍양현감 배홍립, 좌부장에 신호, 우부장에 김득광, 좌척후장에 녹도만호 정운, 우척후장에 사도첨사 김완, 자별도장에 우후 이몽구.. 2021. 4. 11.
[임진왜란16] 히데요시의 분노와 이순신의 잠 못드는 밤 │황현필 한국사 최근 원균에 대한 재평가를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원균이 과연 유능한 장군이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균은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인 것 같다) 임진왜란 전에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지역에서 군량미를 조달하고 각 진영을 조율하는 초유사로 임명된다. 이때 김성일은 이렇게 보고한다. “도내에 감사가 없으니 모든 적변을 당연히 신이 아뢰어야 합니다. 신이 도내에 있으면서 여러 성이 함락된 사유와 여러 장수들이 패전한 상황을 목격하였는데, 말하는 자는 모두 ‘군졸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적과 대진하지 무너져 흩어졌기 때문에 장수가 속수 무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좌수사 박홍은 화살 한 개도 쏘지 않고.. 2021. 4. 10.
[임진왜란15] 조선에 이순신이 있음을 알게하다(1차출정-옥포.합포.적진포해전) │황현필 한국사 조선의 수군은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다. 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펼친다. 왕의 입장에서 전라도의 오른쪽이 오늘날 전라도의 서쪽이 되고(전라우수영), 왼쪽은 전라도의 동쪽이다(전라좌수영). 마찬가지로 경상우수영은 경상도의 서쪽, 경상좌수영은 경상도의 동쪽이다. 가장 규모가 적은 곳이 ‘전라좌수영’이다. 전라좌수영은 5관 5포로 구성되어 있다. 관할지역에 ‘관’이라 함은 ‘고을’이라고 할 수 있고, ‘포’는 ‘포구ㆍ항만ㆍ기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1591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수시로 5관 5포를 순시하여 전쟁준비가 잘된 고을은 칭찬하고 격려하고 전쟁준비가 덜된 고을은 지적질해서 개선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배는 1555년 을묘왜변까지 ‘맹선’이 사용되었다... 2021. 4. 10.
[임진왜란14] '녹둔도 전투'(이순신 장군의 역사무대 데뷔전) │황현필 한국사 녹둔도 전투(1587)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의 삼각주 같은 섬으로 여의도의 두 배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섬이다. 이 녹둔도는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영토가 되어버렸다. 1860년에 애로호 사건(1856년) 때문에 청나라와 영국ㆍ프랑스 연합군이 싸우는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에서 청나라가 패했을 때,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해서 화해를 시켜주게 되었고,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인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에서 엄청난 이권을 빼앗아가게 된다. 이때 전쟁을 끝내게 해준 댓가로 러시아는 청에게서 연해주를 할양받게 된다. 이때 녹둔도도 함께 러시아 영토가 되어버렸다. 1883년에 서북경략사 어윤중(1848~1896)이 간도를 둘러보고 1884년에 고종에게 “녹둔도에는 8백명이 넘은 주민들이 살고 .. 2021. 4. 8.
욕먹으면 오래산다? 욕먹으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나? 이제 몇 시간밖에 안남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를 보면서, ‘이분은 평생 쳐드실 욕을 단번에 드시려고 작정을 했나?’라는 의심이 생겼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으로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는데, 괜히 시장선거에 후보로 출마해서 (언론이 애써 외면하면서 도와줬지만) 많은 부분 이미지에 손상을 입고, 네티즌들에게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럴까?’라는 생각도 든다. 옛말에 욕먹으면 오래산다던데... 이참에 장수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할까? 평생 먹을 욕을 단기간에 먹는 것을 보면서 ‘욕먹으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성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당내경선 때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집회의 개근을 자랑하던 오세후 후보가... 박영선 후보와의 토론에서는 한두번밖에 안.. 2021. 4. 7.
지금 언론이 ‘기레기’와 ‘찌라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 어렵지 않다. 현재 ‘기레기’의 오명을 받은 분야는 정치와 경제, 사회 부문이다. 그리고 ‘찌라시’라는 오명을 받아온 분야는 연예 부문이다. 이러한 오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내공으로 받아온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정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변했다고 스스로 자처해도 그것이 일반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인정받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자들 중에서 스포츠 분야를 담당한 기자들을 정치 분야에 투입하면 어떨까? 그동안 스포츠 담당 기자들은 사실관계를 왜곡해서 거짓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았다. 경기 결과를 나름대로 팩트에 맞게 알리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정치 분야의 사건들을 다루는 데에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기사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경기의 결과(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언급하고, 경.. 2021. 4. 7.
[임진왜란13] 관료 이순신(전라좌수사 전까지) │황현필 한국사 32세에 무과에 합격한 이순신(32세)은 그해 함경도 삼수고을 동구비보 권관(종9품)이라는 말단 관직으로 가게 되는데 함경도 감사 이후백이 활쏘기 시합을 했을 때 활을 잘 쏘아서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35세, 어릴 때 살았던 훈련원봉사(종8품)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전랑’은 ‘정랑’과 ‘좌랑’으로 구분되는데 ‘인사권’을 담당하고 있었다. (병조정랑이라고 하면 쉽게 말해서 군대의 인사권을 관리하는 직책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병조정랑인 서익(5품)이 이순신에게 부당 인사를 청탁하였으나 이순신이 거부한다. (나중에 서익이 이순신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당시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신의 서녀를 이순신에게 첩으로 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35세 때 충청병사 군관을 역임하였는.. 2021. 4. 6.
[임진왜란12] 이순신의 조상, 출생, 어린시절, 청년기와 과거 합격 │황현필 한국사 이순신은 ‘덕수 이씨’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덕수 이씨의 시조인 이돈수가 고려시대에 거란의 침입 때 출정했던 것으로 보아 무인의 기질을 타고 났다는 말도 있다. (10대조 이양준도 무관이었음) 이순신의 5대조 이변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뛰어난 인재였다. 후에 선조가 유성룡에게 이순신의 집안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유성룡은 이렇게 대답했다. “성종 때 이거의 증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선조가 금방 알아들었을 정도로 ‘이거’라는 사람은 알려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은 당시 임금이었던 중종이 죽었을 때 아들 이정을 결혼시키고 잔치를 베풀어서 곤장을 맞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덕수 이씨와 초계 변씨는 아주 가까운 집안이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의 사회는 ‘모계중심사회’였다. 예를 ..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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