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영상 & 유투브]/[황현필 한국사]170 [근대1] 근현대사 시작(시대구분 & 식민지 근대화론) [근대1] 근현대사 시작(시대구분 & 식민지 근대화론) 18세기경부터 서양세력이 아시아에 침투하기 시작하였고 서양의 역사학이 아시아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역사는 발전한다는 전제하에 시대를 구분하는데 서양의 역사는 ‘삼분법’을 사용하는데, 동양은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개발한) ‘오분법’을 적용하고 있다. 삼분법 : 고대 - 중세 - 근대 오분법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 현대 오분법이라고 해도 동양의 역사는 왕조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시대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오분법을 우리나라 역사에 적용하면 대체로 아래와 같이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오분법 : 고대(삼국ㆍ남북국) - 중세(고려) - 근세(15ㆍ16세기) - 근대(17ㆍ18ㆍ19세기) - 현대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에.. 2021. 5. 29. 유투버 황현필 선생의 ‘대한민국수립’ 총정리 유투버 황현필 선생의 ‘대한민국수립’ 총정리 유투브에서 자주보는 한국사에 대한 강의 영상 중에 ‘대한민국수립’에 대해서 황현필이라는 강사가 강의한 영상이 있다. 이 영상은 한 번 보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라 이곳에 정리를 해 두려고 한다. (각 제목을 클릭하면 정리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수립1] 미국의 원폭 두 방이 우리를 독립시켰다? [대한민국수립2] 자학사관과 패배주의...미쳤나? [대한민국수립3] 분단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수립4] 민감한 역사, 한국광복군, 더 대단했지만 감춰졌던... 그리고 남침 [대한민국수립5] 8월 15일의 3가지 의미를 말하려다가 ... [대한민국수립6] 남한이 정통? 북한이 정통? 대답해봐요~(후반부 압권-끝까지 보시길) [대한민.. 2021. 5. 29. [대한민국수립12]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feat.이승만 김구 여운형,,,김일성) [대한민국수립12]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feat.이승만 김구 여운형,,,김일성) 1947년 3월에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냉전체제가 시작되고 미국과 소련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분단의 길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까지 좌우합작을 위해 노력했던 여운형이 1947년 7월에 암살되었다. 미국은 1947년 11월에 한반도의 문제를 유엔 총회로 넘겼다. 솔직히 유엔은 당시에 미국의 거수집단(꼬붕)이었다. 유엔은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당연히 소련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마도 미국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구조사를 위한 유엔의 선거관리위원단의 입국을 북한과 소련이 거부한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총선을 실시하면 자기들이 불리하다고 생각.. 2021. 5. 29. [대한민국수립11] 해방정국,,, 우리에게는 그래도 여운형이 있었다. [대한민국수립11]해방정국,,, 우리에게는 그래도 여운형이 있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우익은 반탁(비상국민회의), 좌익은 찬탁(민주주의민족전선)을 주장했다. (그런데 먼 훗날에는 찬탁과 반탁으로만 가르치지 말고 분단과 통일을 함께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너무 간단하게 찬탁과 반탁의 프레임으로 이야기하면 아직도 ‘찬탁은 빨갱이’라는 인식이 많이 있기 때문에...) 미소공동위원회가 1946년 3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휴회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잘못하면 분단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민족지도자들에게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분단’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승만이 전라북도 정읍에서 ‘분단’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다(정읍발언, 1946.6) 이승만의 .. 2021. 5. 29. [대한민국수립10-2] 김구의 치명적인 실수 2편 [대한민국수립10-2] 김구의 치명적인 실수 2편 김구 선생이 반탁운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였을 것이다. 김구는 반탁운동을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과 병행하여 진행했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따랐던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이 반탁운동을 하게된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김구의 반탁운동과 이후 이승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당시 정황에 대한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어쩌면 남한의 대통령을 이승만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김구의 능력 부족 때문일 지도 모른다. 김구는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1946.3~5)에서 소련은 반탁운동을 하는 세력을 배제하자고 어거지를 부렸고, 미.. 2021. 5. 28. [대한민국수립10-1] 김구의 치명적인 실수 1편 [대한민국수립10-1] 김구의 치명적인 실수 1편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임시정부 수립 미소공동위원회 설치 신탁통치 이 내용을 보면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주제어’는 신탁통치가 아니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 문맹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당시에 좌익 세력은 모스크바3상회의 전문을 읽어보고 신탁통치는 기분 나쁘지만 분단을 막기 위해서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3상지지선언’을 한다. 우익은 신탁통치를 반대하였다. 이때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우익세력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자신들은 ‘애국자’라고 인식하였고,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좌익을 ‘매국노’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때에 남한에 있던 민족의 지도자들은 어떠한 입장을 가지.. 2021. 5. 28. [대한민국수립8-2] 찬탁이 옳아? 반탁이 옳아?(Feat. 검찰개혁이 옳아? 조국사퇴가 옳아?) 2편 [대한민국수립8-2] 찬탁이 옳아? 반탁이 옳아?(Feat. 검찰개혁이 옳아? 조국사퇴가 옳아?) 2편 동아일보가 호외로 낸 기사는 역사적인 오보였는데, 그 내용의 요지는 “미국은 즉각 독립을 주장했고,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접한 우익과 좌익은 모두 다 반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우익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신탁통치를 주장했던 소련을 나쁜 나라로 인식하고 반탁운동을 ‘반소, 반공’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소련은 즉각 독립을 주장했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즉각 독립을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실제 독립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했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조선 백성들에게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기 .. 2021. 5. 25. [대한민국수립8-1] 찬탁이 옳아? 반탁이 옳아?(Feat. 검찰개혁이 옳아? 조국사퇴가 옳아?) 1편 [대한민국수립8-1] 찬탁이 옳아? 반탁이 옳아?(Feat. 검찰개혁이 옳아? 조국사퇴가 옳아?) 1편 해당 영상을 촬영할 당시에는 검찰개혁으로 서초동(촛불집회)과 광화문(태극기집회) 나뉘었다. 그리고 70여년 전의 해방 당시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일어난 갈등을 이야기한다.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지는 못했다. 다음날인 8월 16일에 휘문중학교에서 여운형과 수천명의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여운형은 사회주의자였지만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익 민족주의 계열과 연대할 생각이 있었던 인물이다. 중도 좌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운형은 당시 중도 우익이라고 할 수 있는 안재홍과 함께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전국의 145개 군에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9월에 .. 2021. 5. 25. [대한민국수립7] 해방 당일 그놈 목소리(Feat.여운형, 히로히토, 맥아더) [대한민국수립7] 해방 당일 그놈 목소리(Feat.여운형, 히로히토, 맥아더) 여운형에 대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운형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그다지 자세하게 가르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하에서는 여운형에 대한 수능 출제까지 제한했다고 한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지기 전에 1918년에 신한청년단이 만들어진다. 신한청년단은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보내서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신한청년단의 대표가 여운형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여운형은 조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일본 왜왕과 독대했던 인물이다. 일본 왜왕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부당함을 당당하에 이야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패망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을 때, 조선총독부.. 2021. 5. 25. [병자호란8] 남한산성 46일-치욕의 역사도 우리역사다. [병자호란8] 남한산성 46일-치욕의 역사도 우리역사다. 이번 영상은 남한산성에서의 항쟁 47일간의 기록을 일자별로 정리하였다. 1일차(12월 14일) 적이 개경에 왔다는 말을 듣고 비빈은 김경징(1589~1637)을 시켜 강화도로 보내고 늦게 출발했던 인조는 강화도를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백성의 통곡과 남한산성을 따라 들어가는 이는 수십 명에 그쳤다. 심야에 대책 회의를 하다 영의정 김류는 강화도로 가기를 청하다. 2일차(12월 15일) 새벽 7시 인조는 남한산성 남문을 나와 강화도로 향하지만 최악의 날씨로 다시 산성으로 돌아 최명길이 왕자와 대신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조건을 전달했다. 주화파(主和派) : 전쟁을 피하고 화해하거나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 척화파(斥和派) : 적이나 .. 2021. 5. 24.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7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