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점령군이었는가?(끝까지 보시길)
김원웅 광복회장이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 ‘미군이 친일파를 부활시켰다’라는 발언을 해서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비슷한 발언을 하면서 최근 이슈가 되었다.
심지어 똑똑하기로 유명한 서울시장(오세훈)과 제주도지사(원희룡)까지 나서서 ‘어떻게 미군이 점령군일 수 있느냐?’라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전국 수석까지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1945년 2월 3일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소련에게 독일이 패망한 지 100일 안에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해서 참전하여 만주의 관동군을 격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얄타회담에 의해서 소련은 한반도까지 진군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관동군의 관할 지역이 함경도와 평안도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루즈벨트와 소련의 스탈린이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자는 약속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에 진군한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1900~1979) 포고문(1945.8.25)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 군대와 연합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몰아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신조선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顧慮)의 결과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행복도 조선 인민이 영웅적으로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하여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일제의 통치하에 살던 고통의 시일을 추억하라! 담위에 놓인 돌멩이까지도 괴로운 노력과 피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누구를 위하여 일하였는가?
왜놈들이 고대광실(高大廣室)에서 호의호식하며 조선 사람들을 멸시하며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모욕한 것을 당신들이 잘 안다. 이러한 노예적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저리나는 악몽과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
조선 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여러분들 수중에 있다. 여러분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여러분에 달렸다.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만한 모든 조건을 만들어 놓았다. 조선 인민은 반드시 스스로 자기 행복을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 제조소 및 공작소 주민들과 상업가 또는 기업가들이여! 왜놈들이 파괴한 공장과 제조소를 회복시켜라! 새 생산 기업체를 개시하라! 붉은 군대 사령부는 모든 조선 기업소들의 재산을 보호하며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원조할 것이다.
조선 노동자들이여! 노력에서 영웅심과 창작적 노력을 발휘하라. 조선 사람의 훌륭한 민족성 중 하나인 노력에 대한 애착심을 발휘하라. 진정한 사업으로써 조선의 경제적 및 문화적 발전에 대하여 고려하는 자라야만 모국 조선의 애국자가 되며 충실한 조선 사람이 된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이러한 포고문에 입각해서 소련이 ‘해방군’이라는 표현을 학계에서 하고 있다. 반면 남한에 진군한 미군 사령관 맥아더 포고령(1945.9.7)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조선 인민에게 고함.
본관은 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본관에게 부여된 권한으로서 이에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및 조선 인민에 대한 군정을 펴면서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최고 통치권은 당분간 본관 권한 하에 시행된다.
[2조] 정부, 공공단체 및 기타의 명예직원과 고용인,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 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모든 기록 및 재산을 보호 보존하여야 한다.
[3조] 모든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4조] 주민의 재산권을 이를 존중한다. 주민은 본관의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직무에 종사한다.
☞ 예전에 근현대사 교과서(금성출판사)에 “소련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해당 표현이 삭제되었다.
몽양 여운형은 해방 직후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 1945.8.15)을 만들었다가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정부적 성격을 띤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 건준을 인공(조선인민공화국, 1945.9.6)으로 개칭하였다. 여운형은 사회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좌우를 뛰어넘기 위해서 이승만을 주석으로 세우고 극우세력인 송진우(1890~1945)와 김성수(1891~1955)에게도 참여를 요청하였다. 물론 이들이 다 불참하면서 인공에는 사회주의 세력이 모여있는 모양세가 되었다.
- 해방 : 1945년 8월 15일
- 건준 : 1945년 8월 15일
- 인공 : 1945년 9월 6일
- 맥아더 포고령 : 1945년 9월 7일
- 미군 상륙 : 1945년 9월 8일
- 미군정 시작 : 1945년 9월 9일
인공은 전국의 140여개 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건준 때 있었던 ‘치안대’가 발전한 것이었다. 소련군은 북한에서 인민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남한에서 미군은 인민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충칭 임시정부와 그 산하에 있었던 한국광복군의 무장해제를 지시하였다. 물론 북한도 김일성만 데리고 들어오고, 화북조선독립동맹(1942)이나 조선의용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솔직히 맥아더 포고령 [제2조]가 친일파를 부활시킨 것이다. 당시 일제 밑에서 친일했던 사람들은 일제가 떠난 뒤에 숨어 살았지만, 미군이 들어오면서 다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상급 자리를 채웠던 일제가 떠나면서 그 자리를 미군이 채웠는데 다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친일했던 사람들이 승진하면서 더 큰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그들로서는 향후 친미정권이 들어서야 자신들이 살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자신들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자(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반공’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반공의 뿌리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친일파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있는 현실이고, 과거 조상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은 하지 않고, 오늘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무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나중에 우리가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외세에 협력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물론 침략은 아니지만 지금도 외세인 일본과 미국에 아부하는 세력들은 그런 DNA를 갖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은 못할지언정 협력은 안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방 정국에 미군은 분명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1949년 10월에 미군이 철수하였고,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자격으로 미군이 참전하였으며,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지금은 동맹국의 입장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상황을 이해한다면, “지금 있는 미군이 점령군이란 말이냐?”라는 바보같은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해방 정국의 미군과 지금의 미군은 다른 성격이다.
그런데 해방 정국에서 미군이 나빠서 점령군이고 소련이 착해서 해방군이었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일제강점기에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은 해방 정국에 민중적 지지를 상당히 받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정희 조차도 남로당에 가입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은 빨리 정부를 세우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정권이 되고 소련의 위성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미국이 조금 강하게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압박한 것은 잘못하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과 소련의 입장이 우리로서는 한스럽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해방군으로 들어온 소련군의 개별적인 행동은 양아치급이었다. 그런 점에서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의 개별적인 행동은 양아치 같은 행동은 아니었다.
물론 남한에서 친일파 처벌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게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엄밀하게 남한에서 친일파 처벌에 실패한 책임은 이승만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병신같은 주장이 어디 있는가? 오늘날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받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원폭투하가 아니었으면 우리의 해방은 조금 늦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당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우리는 해방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카이로 선언(1943)에 참석하려는 중국의 장제스에게 김구, 김원봉, 지청천, 조소앙, 김규식 등이 조선의 해방을 강력하게 언급하였고, 결국 중국의 장제스가 주장해서 카이로선언의 부록으로 조선의 해방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원래 카이로 선언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식민지를 해방시키겠다는 주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했기 때문에 1910년에 합방된 조선은 해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장제스의 노력으로 다음과 같은 부록이 추가된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조선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소련을 참전시키고 일본을 분할했어야 하는데,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반도를 분할 시킨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해방 정국에는 분명 미군이 점령군으로 주둔했는데, 이후 철수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동맹국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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