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9] 고당전쟁의 시작 (이세민 vs 연개소문)
수나라와의 전쟁 영웅이었던 영류왕은 당나라에게 너무 납작 엎드렸다. 당나라 사신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서 당나라에게 고구려 지도까지 바쳤고, 수나라와 싸운 전승기념비도 부쉈다고 한다. 결국 영류왕의 친당정책에 불만은 품은 연개소문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는 명분은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신라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세민이 가장 아꼈던 장수 중에 이정(李靖)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이세민과 함께 출병하지 않았다. 신채호의 신채호 『조선상고사』, 장열의 『규염객』을 보면 이정이 연개소문의 제자로 나온다. 이정은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면서 ‘연개소문의 지략과 병법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폐하께서는 연개소문을 뛰어넘기 어렵습니다... 어찌 제자가 스승과 자웅을 겨룬단 말입니까?’라고 말했고, 이정은 남아서 수도 장안을 지키게 된다.
당나라의 군대는 이세적(후에 당태종의 이세민과 같은 글자를 쓸 수 없다고 하면서 ‘이적’으로 이름을 바꿈)이나 돌궐의 장군인 계필하력 등이 출정하였다. 중국측의 기록에는 10만명이 출전했다고 나오는데, 이건 X구라인 것 같고 아마도 30~50만이 출전한 것으로 보인다. 당태종이 병력을 쪼개서 성들을 격파했는데, 10만이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당태종은 수양제의 패배를 교훈삼아서 뛰어난 공성장비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4월에 공격을 시도하였는데, 신성과 건안성은 점령하지 못하였지만 현도성과 개모성은 점령하였다. 그런데 수나라의 113만을 막아낸 요동성이 의외로 10일만에 점령을 당했다. 이 당시에 바람이 불어서 요동성에 불이 났고, 2만 병력 중에 1만의 병력이 불에 타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암성주는 바보같이 항복해 버린다. 그리고 6월 경, 당태종은 안시성을 공격한다.
당태종은 요택을 건넌 후에 부교를 불태우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런데 의외로 연개소문은 당나라 병력이 요택을 쉽게 건너게 했다. 그것은 독 안에 가둬놓고 공격해서 개고생해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당태종이 의외로 몇 개의 성들을 함락시키자 연개소문은 15만 병력을 보냈다. 대대로 고정의와 고연수, 고혜진이 거느린 개마무사(중갑철기병)는 도중에 당나라 병력을 주필산에서 상대했다. 대대로였던 고정의는 기다리자고 했지만, 젊은 고연수, 고혜진이 공을 세우려는 욕심에 공격했다가 포위되어 항복했다고 한다. 『구당서』에는 이때 15만 전부가 포로가 되었고 당태종은 그들을 풀어줬다고 한다. 이후 약간 민망했던지, 『신당서』에는 3만으로 축소시켰다.
아마도 고연수와 고혜진이 거느린 부대가 패하고 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고정의의 부대는 아마도 고스란히 남아서 안시성에 합류하거나 후방에서 당태종 이세민을 괴롭혔을 것이다. 실제로 주필산 전투에서 당나라는 많은 병력을 손해보았다. (어찌보며 주필산 전투는 당나라 입장에서는 젔지만 잘싸운 전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당태종 이세민은 곧장 고구려 수도로 진격하는 것은 후방에 남아있는 성의 병력이 퇴로를 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안시성을 점령하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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