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7] 조선 4000년 이래 최고의 인물?
우리는 970여 차례 외침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중국 본토를 지배하고자 쳐들어 가본 적은 없다.
발해 무왕이 장문휴를 시켜서 산둥반도를 선제 공격한 것은 무왕의 동생 대무예가 당나라로 도망쳤기 때문에 잡으러 간 것이었다. 그리고 고구려 영양왕이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한 것은 기선제압의 용도였을 것이다. 고려 시대 공민왕, 우왕,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고토 회복(다물정책)의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직접 중국을 지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물론 중국을 지배해도 오늘날에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거란은 멸족했고, 만주족(읍루ㆍ숙신 - 말갈 - 여진을 거쳐 만주족이 되어 청이라는 나라를 건국해서 중국을 지배함)은 오늘날 중국의 소수 민족이 되어버렸다.
일제의 식민사관 중에 정체성론, 타율성론, 사대성론 등이 있는데, 솔직히 우리에게는 사대적인 DNA가 있는 것 같다.
불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고려가 아니라 불교의 고려가 되고,
유학이 들어오면 조선의 유학이 아니라 유학의 조선이 된다.
광개토대왕은 후연을 공격해서 요동을 확보하고 후연을 거의 멸망시키고 만주를 재패했지만, 연개소문은 중국을 지배해 보겠다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다.
현존하는 고구려의 역사책이 없는 게 안타깝다. 『유기』 100권을 영양왕 때 이문진이 『신집』 5권으로 편찬했다는 기록만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은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책은 중국의 입장에서 연개소문을 바라보았으며, 삼국사기를 기록한 김부식은 김유신을 높게 평가하면서 열정 10권 중에 3권을 김유신에 할애한 반면, 연개소문은 1권이면서 악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유학자들의 시선으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살해하고 충을 져버린 미치광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단재 신채호는 연개소문을 “조선 역사 4,000년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하나인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627~649)는 당시 중국의 세계화를 이룬 인물이다. 그러한 시기에 백제의 의자왕에게 성충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당의 세민이는 연개소문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저 같은 인물은 연개소문의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연개소문이 활동하던 시기 일본의 기록에서는 ‘중국에는 이세민,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이라는 대단한 인물들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전근대 인물 중에서 알고 있는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광개토대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호태왕’(好太王)이라는 명칭의 광개토대왕은 동북공정 이후 중국 인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북공정 이후 중국인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한국인들은 이 광개토대왕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을지문덕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중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기에...)
그런데 중국인들이 어지간하면 다 아는 인물이 바로 ‘연개소문’이다. 중국의 경극에서 유명한 인물은 ‘장비’, ‘악비’, ‘설인귀’ 등이다. 그런데 경극에서 연개소문은 공포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인식이 되는 연개소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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