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처음 사람들] 1강. 홍삼 팔러 갔다가 성경 팔러 돌아온 매서인, 서상륜 (1) - 이덕주 교수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등장하는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교회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주님의 준엄한 책망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처음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에 주님은 ‘촛대를 옮기겠다’는 준엄한 책망을 하셨다. 성령이 떠나간다는 말이다. 성령이 떠나간 교회는 사람만 남는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마치 에베소교회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과, ‘처음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언제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그것을 추적해서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5천년의 역사 동안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고, 오히려 침략과 지배를 당한 민족이 한국 민족이다. 이처럼 ‘고난’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로 인식되어 있다.
고난 : Suffering
생존 : Suvival
희생 : Sacrife
고난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심성은 ‘옥토’가 되어 있었다. 고난 속에서 생존하고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한국민족은 선교사가 전해준 십자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인데, 바로 이 십자가를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는 민족이었다.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의 특징
- 고난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한국의 기독교 선교는 사랑에 의한 선교로 진행되었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기도’
“Mission not by force but by love”
Mission by force : 힘에 의한 선교
Mission by love : 사랑에 의한 선교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는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선교사였다. 그는 동인도회사(17세기 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유럽인들이 동방 진출을 목적으로 세운 회사) 소속으로 조선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려다가 실패하고 돌아간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복음적인 동기가 있었지만, 그가 속한 동인도회사는 제국주의적 모습을 갖고 있었다.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목사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라로 할 수 있는데, 그는 제너럴 셔면호와 함께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도착하였다가 순교하였다. 제너럴 셔면호가 조선에 도착한 시점은 한창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해서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병인양요가 일어난 시점이었다(1866년, 고종 3년). 조선의 조정은 외세의 접근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던 것이다. 토머스 선교사도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복음적인 동기가 있었겠지만, 그가 타고 온 배(상선)는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2대 특징
- 사람보다 말씀(성경)이 먼저 들어왔다.
- 선교사보다 토착 전도자가 먼저 들어왔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만, 말씀은 오류가 없다. 한국교회에 선교사보다 먼저 성경이 들어왔으며, 조선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토착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진 것은 복음이 급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1870년대 영국에서 파견된 로스 선교사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로스 선교사는 1874년에 고려문을 방문하여 (중국인 통역관을 통해서)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때 로스 선교사는 조선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이 중국인과는 달랐다고 후에 선교보고를 하게 된다. 로스 선교사의 설교에 상당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조선 사람들은 설교가 끝나고 로스 선교사가 입고 있던 양복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로스 선교사는 한문성경과 함께 양초를 선물로 나눠주었다.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은 양초만 갖고 성경책은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한문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의 아들이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다가 실망하였는데, 아버지가 만주에 갔다가 받아온 한문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3년간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을 키웠으며 세레를 받기로 결심하고 만주로 건너가서 메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 1879년에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백홍준 장로’로 한국 최초의 전도자, 최초의 장로, 개신교 최초의 한국인 순교자라 할 수 있다.
☞ 다음 시간에는 백홍준의 친구인 서상륜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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