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처음 사람들] 2강. 홍삼 팔러 갔다가 성경 팔러 돌아온 매서인, 서상륜 (2) - 이덕주 교수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중국 잉쿠로 건너가서 홍삼 장사를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중국 잉쿠에서 서상륜이 중병에 걸리게 되고 당시에 로스 선교사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도와주던 이응찬이라는 의주의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응찬은 백홍준이 세례받은 직후에 결단하고 세례를 받았다)
이응찬은 1876년경 홍삼 장사를 하려고 전재산을 털어서 홍삼을 사서 압록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홍삼이 다 물에 빠져버리고 전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이응찬은 잉쿠에서 친구들이 장사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 로스 선교사가 성경을 조선말로 번역하려고 시도를 하면서 먼저 조선말을 자신에게 가르쳐줄 어학선생을 찾고 있었다. 파산상태인 이응찬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어학선생이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응찬은 로스 선교사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 절대로 당신 종교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
- 고향에 있는 가족이 위험하니 당신을 만나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
이응찬은 밤에만 로스를 만나러 가서 조선말을 가르쳐주었다. 로스 선교사는 언어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1년만에 조선말을 배웠으며 영어로 한국 문법책을 쓰기도 하였다.
이후 로스 선교사가 성경을 번역하는데 이응찬이 동참하기를 원했고, 이응찬은 1877년부터 성경 번역에 참여했다. 이때 이응찬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하였고(최성균, 김진기, 이성하 등) 그들도 성경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결실로 1879년에 로스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번역 원고를 가지고 영국으로 가서 한국말 성경을 인쇄할 수 있는 재정적인 후원을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때(로스가 영국으로 간 사이에) 백홍준이 찾아와서 메킨타이어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것을 본 이응찬도 결심하고 매킨타이어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다. (백홍준과 이응찬의 믿음은) 강요하지 않는 믿음이었고,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깨달은 믿음이었다.
로스 선교사는 영국에서 모은 헌금으로 심양에서 전도책자(세례문답)를 인쇄하였는데, 센양 동관교회 옆에 문광서원이라는 인쇄소에서 인쇄하였다.
1882년 센양 문광서원에서 최초 한글성경인 『예수성교 누가복음서』, 『예수성교 요안내복음서』가 인쇄되었다. 로스 선교사는 의주 상인들 가운데 세례받은 사람들을 전도자로 매서인으로 발탁하였다.
1879년 서상륜이 동생 서경조와 홍삼 장사하러 만주 잉쿠 방문하였고, 객지에서 서상륜이 중병에 걸렸을 때, 고향 친구인 이응찬이 서상륜의 위급함을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알렸다. 그리고 매킨타이어 선교사의 도움으로 영국인 의사의 치료를 받고 소생되었다.
서상륜에게 로스 선교사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권하였다. (먼저 사랑하고, 먼저 베풀고, 먼저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전도의 시작이다) 동생 서경조는 형의 치유 과정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서상륜은 다음해인 1881년 4월에 재차 잉쿠를 방문하였고, 1881년 센양에서 로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한글 성경 번역작업에 참여하였다.
서상륜은 1882년 10월에 매서인(권서)로 임명을 받고 한글 전도문서와 성경을 갖고 귀국, 의주와 소래, 서울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성경은 불온문서였기 때문에, 국경에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오다 걸려서 모두 압수당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면서 한권만 받아가지고 나왔다.
이후 성경을 국내에 가지고 들어오기 위해서 이들은 책을 해체해서 장부로 위장하거나, 성경이 쓰여있는 한지를 풀어서 짚신으로 만들어서 갖고 들어온 후에 다시 펴서 성경으로 복원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1882년부터 2년동안 3천여권이 국내로 들어왔다. (나중에는 묄렌도르프 공사를 통해서 성경이 대량으로 국내로 들어왔다)
이러한 성경을 서상륜은 의주에서 서울로 오가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당시에 유교, 불교 등의 기존 종교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젊은이들에게 성경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1884년 연말에 의주와 소래, 서울 등지에 세레 지원자 70여 명이 확보되었다고 로스 선교사에게 보고되었고, 로스 선교사는 영국 스코틀랜드 보고서에 이러한 상황을 적어서 보냈다.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이 들어와 선교하면서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이 들어와 계셨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말씀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씨를 뿌리러 들어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뿌려진 씨를 거두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사람 보다 말씀이 먼저 들어왔으며’, ‘선교사보다 토착 전도자들이 먼저 들어왔다.’ 이처럼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신앙이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말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자.”
의주에서 복음이 전파되면서 의주 감영에서 백홍준 선생을 감옥에 가두는 상황이 발생하자, 서상륜 형제는 고향을 떠나게 된다. 1883년에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소래에서 신앙공동체(소래교회)를 조직하고 신앙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1885년에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이 입국했지만 초기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 정부에서 이들이 한양을 떠나 여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입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래의 신앙공동체는 선교사들에게서 세례를 받기를 원하였지만 선교사들이 황해도까지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1886년 서상륜이 서울에 올라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개척 선교사들을 만났고, 선교사들이 황해도까지 올 수 없다면 자신들이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한 서상륜과 소래교회 교인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언더우드(당시 27세)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는 어떠한 과정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까? 서상륜과 서경조를 만났던 백낙준 박사의 증언을 윤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처음에 언더우드는 세례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세례받는 과정이 엄격했었다) 추운 겨울에 언더우드를 찾아온 그들은 갑자기 두루마기를 벗고 뒤를 돌아섰다. 그들은 모두 다 등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묶고 있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in a literal sense” (문자적으로)
선교사들이 한국의 교회를 표현하면서 이와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말은 초기 기독교 교리 논쟁에서 서방의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동방의 안디옥 학파를 경멸하면서 쓰는 용어였다. 의미를 추구하는 서방과 문자 그대로 믿으려는 동방을 비교하는 표현이다. 동양의 문화는 의미보다는 ‘경’(經) 자체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부적처럼 믿고 의지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은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가 이후 소래교회를 지도하게 된다. 소래교회는 마을 주민의 70~80%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굿을 하던 장소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백낙준 박사는 이러한 소래교회를 한국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불렀다. 소래교회는 선교사의 도움이 없이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였다.
소래교회의 용마루 가운데의 장식에는 신목(神木)이 있던 자리에 십자가로 대치되었다. (신목은 당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나무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소래교회 뒤에 있는 나무에는 무당들이 굿을 하면서 영험한 물건들을 걸어놓았던 나무들이다. 그러한 나무를 잘라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다.
후에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이 소래교회를 방문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래교회의 기둥에는 한문으로 성경구절을 적어놓으면서, 동양의 토착적인 문화를 버리지 않고 복음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 개신교 1세대 신앙인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말씀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사람이나 목회자는 실수할 수 있다. 각양각색의 신학서적과 주석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말씀에 바로 서기를 원하자. 그리고 받은 바 은혜를 나누자. 말씀대로 실천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바로 한국 교회의 처음 사랑이자 처음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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