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9] 계유정난(수양대군 vs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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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유투브]/[황현필 한국사]

[조선9] 계유정난(수양대군 vs 김종서)

by [수호천사]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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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9] 계유정난(수양대군 vs 김종서)

 

 

문종의 세 번째 부인이 단종을 낳다가 죽었고, 단종은 어머니 없이 키워지게 되었다.

  • 1살 : 태어나자마자 원손
  • 8살 : 세손
  • 10살 : 세자
  • 12살 : 왕

 

 

단종이 왕이 되었을 때, 그를 지켜줄 외가 쪽이 없는 상황이어서 상당히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름 어렸을 때 세자 교육(서연)을 잘 받았다고 하며, 왕이 된 후에 배우는 자세로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했다고 하다.

 

세종의 아내 소헌왕후 소생(대군들) 중에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왕의 재질을 타고 났다.

  1. 문종
  2. 수양대군
  3. 안평대군
  4. 임영대군
  5. 광평대군
  6. 금성대군
  7. 평원대군
  8. 영웅대군

 

세종의 유일한 실수라면 대신들과의 관계에서 왕실 종친의 힘을 강화하면서 수양과 안평에게 많은 것을 맡겼다는 것이다. 이로써 수양과 안평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단종 때 그를 보좌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영의정 황보인
  • 좌의정 김종서(1383~1453)
  • 우의정 정분

 

이들 중에서 김종서가 실세였는데, 김종서는 세종 때 김종서가 이징옥과 함께 6진을 개척하였다. 그는 세종 때 총애를 받고 문종때 충성을 다하면서 동국병감을 만들기도 했다. 김종서는 종친인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다.

 

당시에 단종이 어렸기 때문에 황표정사를 통해서 김종서와 황보인을 중심으로 하는 대신관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나름 술수를 덜 부리고 야욕이 덜하다고 생각한 안평대군과 친하게 지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대신관료와 안평대군이 수양대군과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대신관료(김종서, 황보인) + 안평대군 VS 수양대군

 

코너에 몰린 수양대군에게 한명회(1415~1487)가 합류한다. 한명회를 소개한 사람은 권람(1416~1465)으로 삼국유사의 일연과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서 고조선의 출발을 대동강 유역으로 상정했는데, 권람은 응제시주에서 고조선의 출발지를 요령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명회와 죽마고우였던 권람이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를 소개한 것이다.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은 명으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온 사람이었다(당시 화령과 조선 둘 중에 선택해 달라고 명나라 황제에게 요청하였고, 기자가 세운 조선을 언급하면서 조선으로 결정했다고 함). 한명회의 가족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한명회는 작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칠삭둥이로 백수 건달이었던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모사꾼이 된다.

 

당시 조정이 관료들은 수양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때 단종이 왕이 된 후에 고명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것을 수양대군이 자청하였고, 이것은 수양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게 만들었다. 이때 함께 고명사은사로 다녀온 신숙주(1417~1475)는 수양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무예가 뛰어난 홍윤성(1425~1475)이 수양에게 합류하였다.

 

1453년 10월 12일, 수양대군은 결국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서 김종서가 방심한 틈을 타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쳤고, (이때 김종서는 즉사하지 않고 목숨은 건졌지만 후에 발각되어 목이 잘린다) 한명회의 살생부로 수많은 관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안평대군은 귀양을 보냈다가 사약을 내려서 죽게 하였다. 태종 이방원은 이복동생들은 죽였어도 친형제는 죽이지 않았지만 세조인 수양대군은 친형제도 죽였다. 이후 수양대군은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겸임하면서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의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라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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