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10] 세조 vs All of them(Feat. 단종과 사육신)
계유정난(1453년)은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안평대군,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단종이 왕인 상태에서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징옥의 난
이후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오른팔이자 함경도의 군사권을 가지고 있는 이징옥(1399~1453년)을 제거할 필요가 생겼다. 조선 세종 때 4군(압록강)은 최윤덕, 6진(두만강)은 김종서와 이징옥이 개척하였다. 이징옥이라는 이름은 여진족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였다.
세조는 이징옥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함경도 도절제사를 파견하였고, 순순히 서울로 향하던 이징옥은 다시 함경도로 방향을 틀어서 수양대군이 내려보낸 도절제사를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이징옥의 난, 1453년).
이징옥이 함경도의 여진족을 사람취급하지 않고 밟았기 때문에 여진족은 이징옥이 공포의 대명사였지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결국 부하들의 배신으로 난은 진압되었고, 이후 세조는 발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단종을 압박해서 왕위에 오름
주변에서는 설마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를 죽이거나 쫓아내고 왕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단종 역시 두렵지만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옛날 중국의 주공(BC ?~1032년)을 본받기를 원했지만 수양대군이 존경한 인물은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가 된 당태종 이세민이었다.
단종이 15세가 되었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수양대군의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수양대군이 술수를 써서 단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권자신이나, 단종을 모셨던 궁녀들이나 금성대군을 유배보내거나 죽이거나 하면서 압박하였다. 단종은 자신이 왕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핍박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하들은 모조리 수양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단종은 왕위를 수양에게 넘기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나기로 결심한다. 이때 단종의 옥새를 건네주던 성삼문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1455년에 세조는 드디어 왕이 되었다.
단종 복위운동과 사육신, 생육신
이후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이 중심이 되었다. 한번의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명나라 사신이 올 때 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유응부와 성삼문의 아버지가 맡게 된 것이다. 야사에 의하면 한명회가 낌새를 눈치채고 호위하는 사람의 무장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다. 당시 무인이었던 유응부는 미루지 말자고 하는데, 성삼문과 박팽년이 미루자고 결심하였다. 이후 김질(1422~1478년)의 밀고로 드러나게 되면서 이들은 세조에게 국문을 받으며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생육신 중 한명인 남효은의 『육신전』에 의하면 성삼문은 세조에게 ‘전하’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나리’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세조가 자신의 녹봉을 받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성삼문은 받은 녹봉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박팽년은 충청도 관찰사일 때 자신에게 보낸 글에 ‘신’(臣)이라고 쓰지 않았느냐는 세조의 질문에 자신은 ‘거’(巨)를 썼다고 하였다. 이개는 세조에게 『경국대전』을 만드는 사람이 법대로 하지 않는다고 따졌으며, 유성원은 집에서 자결하였다고 하다. 무인이었던 유응부는 거사를 미룬 성삼문과 박팽년을 비판했다고 한다. 결국 세조는 사육신들을 다 죽여서 시신을 길거리에 효수하였다. 이들의 시신을 생육신(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은) 중의 한 명인 김시습이 수습해서 노량진에 묻어주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보는 사람들은 사육신 묘를 찾는 사람은 시험에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노량진 사육신 묘에 가보면 김문기(1399~1456)가 추가되어 있다(사육신이 아니라 사칠친). 김문기의 후손인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손을 썼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사육신은 남효은의 『육신전』이나 후손들에 의해 언급된 측면이 있고, 실제로 당시에 관료들 중에 70여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세조는 관료들의 삼족을 멸하려고 하였고, 16세 이상은 죽임을 당하고 어린아이들과 여인들은 노비가 되었다고 한다.
단종의 죽음
사육신이 세조를 죽이려는 데 동의했다고 해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된다. 세조실록에는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는 날 단종이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은 세조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 세조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세조가 내린 사약을 한 때 상왕이었던 자신이 먹고 죽을 수 없다고 해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단종은 영월을 지키는 산신령이 되었다고 하는데, 세조가 보낸 영월 부사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야사에 의하면 단종의 친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 종기가 나서 후에 그것으로 세조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신숙주 부인은 당연히 성삼문, 박팽년과 함께 뜻을 같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결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신숙주가 살아 돌아온 것을 한탄하며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신숙주가 후에 세조의 임명장을 받으러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길에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단종의 주변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그 정도로 세조는 잔인한 면이 있었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1440~1521년)만 장수했다고 한다. 세조는 자기 편과 자기 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호불호가 명확한 인물이었다.
다음번 강의에서 세조의 치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일단 오늘의 강의까지는 수양대군 세조는 X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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