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수립1] 미국의 원폭 두 방이 우리를 독립시켰다?
독립(獨立)은 ‘혼자 섰다’는 뜻이어서 1945년 이후 남과 북이 분단된 상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독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좀 마음에 린다. 진정한 독립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해방’이라는 단어가 나을 것 같다.
1945년 해방 이전의 상황
-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됨
-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함
-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됨
-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만약 2차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을까?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더라도 우리는 계속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고, (시기적으로 늦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독립을 쟁취했을 것이다.
미국의 원폭 투하와 연합국의 승리가 우리의 해방을 앞당겨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이 헛발질 한 것 아니고 헛수고 한 것은 아니다. 그분들이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해방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독립이 처음 거론되었던 것은 카이로 회담(1943)이다. 이 회담에서 영국의 처칠은 중국의 장제스를 무시했지만, 미국의 루즈벨트는 개인적으로 장제스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한반도 문제가 처음 거론된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특별조항>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절차에 따라(in due course)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
만약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영토만 원상복귀 시킨다면 1910년에 한일합방된 한반도에 대해서는 일본이 계속 주도권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특별조항으로 한반도가 거론되었고 이것이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을 통해서 재확인 되었다.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 독립은 장제스가 건의한 것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한반도를 국제가 공동 경영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제스가 인정하는 독립운동가는 김구와 김원봉이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의거가 일어났을 때 장제스는 “백만 중국 군인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명이 해냈다”라고 감탄하였고, 김구의 상해 임시정부와 함께 하자고 하면서 머지않아 중국 관내에 무장단체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이 약속을 믿고 김구는 이후 8년 동안 장제스를 따라다닌다.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을 장제스의 비위까지 맞춰가면서 따라다닌 결과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원봉은 사회주의자이고 의열단이었는데 의 열단원을 장제스가 교장이었던 황포군관학교에 유학을 시키기도 하였으며, 장제스는 김원봉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제스가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만들게 하고 김원봉을 교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그리고 김구 보다 먼저 무장단체인 조선의용대를 만들도록 허락하였다(1938년). 김원봉은 이후 김두봉이 북쪽의 마오쩌뚱에게 합류했을 때 김구와 장제스가 있는 충칭으로 합류하였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가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즈벨트를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주석), 김규식(선전부장), 조소앙(외무부장), 지청천(한국광복군 총사령관), 김원봉(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장제스를 찾아가서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독립에 대한 확답을 받고 오라고 압박을 넣었다.
장제스의 건의 때문에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이 언급되었고, 포츠담회담(1945.7)에서 한반도의 독립이 재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해방 이전에 우리 국민들은 2차대전이 끝나면 독립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외교에서는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장제스는 아마도 자신과 함께 다녔던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이 독립된 한반도에서의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한다면 향후 동북아 정세에서 자신이 중국을 다스릴 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마오쩌뚱에게 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보수 유투버가 카이로 회담 전에 이승만이 루즈벨트에게 한국의 독립을 요청했고 루즈벨트가 약속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료적 근거는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루즈벨트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장제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누군가 우리나라는 어떻게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우리 훌륭하신 독립운동가들이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해서 해방을 맞이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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