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13] 민비 비판에 대한 올바른 자세
민비는 당시 조선의 국익을 위해서, 조선의 백성을 위해서는 1도 노력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익, 민씨 일가를 위해서만 노력한 인물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만약 조선이 일본이 아닌 청이나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면 민비는 이완용 버금가는 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민비가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이었어도 일본에 의해 죽은 것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민비가 아무리 역사적 비판을 받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민비를 일본이 죽인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그때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현해탄을 건너서 일본 천황의 부인을 죽여야겠다는 시도가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가르치며 비판을 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교훈을 삼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선의 역사를 보면서 ‘조선은 당연히 멸망했어야 하고, 미개한 민족이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멍청한 사고’로 발전하는 또라이들이 최근에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상과 민족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하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자기의 부족함에 대해서 부모탓을 하고, 나아가 국가탓을 하고 민족탓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우리나라 5천년 역사 속에서 강대국의 간섭을 받기는 했지만 국가 자체가 없었던 시대는 일제강점기(1910~1945) 뿐이었다.
조선이 맛이 가버린 임진왜란 이후에 차라리 조선이 망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국가가 생겼더라면 우리 민족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19세기 조선의 무능함은 한심 그 자체였다. 수많은 식민지 국가들도 한번 이상은 제대로 개겨보고 식민지가 되었는데, 우리 조선은 국가의 군대가 제대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줘 버렸다.
조선은 성리학적 가치관 때문에 망했다. 존화주의(尊華主義), 화이사관(華夷史觀)으로 명분만 앞세우다가 청나라에게 두 번 털렸다. ‘친명배금’을 주장하다가 정묘호란으로 한번 털리고(1627), ‘존명배청’을 주장하다고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바닥을 이마로 세 번 두드리는 치욕까지 당했다. 솔직히 조선은 그런 짓을 당하고도 이후에 계속 정신을 못차리고 명나라 신종(만력제)을 위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 조선의 한심함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사대성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바로 당신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력 순위 11위, 군사력 순위 7위의 나라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과거 역사적으로 비판받을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인물이 나오지 않도록,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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