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10] 대원군 VS 민비(며느리 잘못들인 시아버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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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유투브]/[황현필 한국사]

[근대10] 대원군 VS 민비(며느리 잘못들인 시아버지의 비극)

by [수호천사]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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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10] 대원군 VS 민비(며느리 잘못들인 시아버지의 비극)

 

 

흥선대원군이 1863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1873년까지 10년간 집권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흥선대원군은 대내적으로 왕권강화(안동 김씨 축출, 과거제 부활, 비변사 폐지, 경북궁 중건, 대전회통, 육전조례편찬)를 꾀하였으며, 민생 안정을 위해 삼정의 문란을 개혁(양전사업, 호포법, 사창제)하려고 하였고, 서원을 철폐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통상수교거부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에 1866년에 병인박해,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가 일어났고, 1868년에 오페르트 토굴 미수 사건이 일어났으며,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1863년에 12시에 왕위에 오른 고종은 15세에 중전을 맞아들이게 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은 외척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미한 집안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려고 하였고, 결국 자신의 처갓집에서 며느리감을 선택하게 된다.

 

남연군(대원군 아버지)은 여흥 민씨 집안과 결혼함
대원군 자신도 여흥 민씨 집안과 결혼함
고종도 여흥 민씨 집안과 결혼함
순종도 여흥 민씨 집안과 결혼함

 

대원군의 처갓집에 처남으로 민태호, 민승호, 민겸호가 있었는데 민승호가 민치록의 양자로 가 있었다. 민치록은 일찍 죽었는데 그의 외동딸 민자영(민아영)이 착하다고 대원군의 아내가 추천하였고, 대원군은 며느리가 되어도 외척으로 권력을 탐할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16살인 민자영을 중전으로 맞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고종은 자신의 유모인 이상궁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아들까지 낳게 되었다(완와군). 민비는 남편인 고종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시아버지 대원군의 엄한 모습에 주눅이 들어서 살았다고 한다.

 

민비인가? 명성황후인가?
민비는 우리 역사를 통털어 최악의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있다. 고종이 1897년에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민비를 명성황후로 추존하였기 때문에 민비라고 부르지 말고 명성황후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고종은 광무제가 아닌 고종으로 말하면서 민비만 명성황후라고 부르는 건 코메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부르고 싶다면 고종은 ‘광무제’라고 부르는 게 맞다. 그런데 1897년 이전까지는 고종은 광무제가 아니라 고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민비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다.

 

대원군 같은 엄한 시아버지 밑에서 민비는 아들을 낳았는데, 첫 번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유산되었다고도 함).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민비는 너무 귀한 아들이라 직접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한다(당시에 조선의 왕자들은 대부분 유모가 키웠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항문이 없이 태어난 것이 밝혀지고, 서양 선교사 알렌은 서양의 의술로 가능하다고 했지만 흥선대원군이 장차 나라의 임금이 될 아기의 몸에 감히 칼을 댈 수 없다고 하면서 산삼을 먹이라고 내려주었다고 한다. 결국 아기는 죽게 되었고 민비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시아버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원군이 수술을 하자고 했는데, 민비가 주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왕의 대변 문화에 대한 언급은 실제 영상으로 확인하시길]

 

이후 태어난 셋째 아들(훗날 순종)은 조금 모자란 상태로 태어난 듯 하다. 귀하게 얻은 자식의 무병장수를 위해서 민비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에 쌀을 투하하면서 나라의 재정을 탕진해 버렸다.

 

1873년 대원군이 섭정으로 집권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고종은 22, 민비는 23살이었다. 이때 고종과 민비는 최익현(1833~1907)에게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최익현이 흥선대원군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종친의 정치 참여를 금하소서”라는 돌직구를 날려버렸다. 이때 고종과 민비는 유생들에게 호포법의 폐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결국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의 친정체제가 시작되었는데 1873년 이후를 ‘민씨척족정권’이라고 한다. 이후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욕으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었으며, 대원군이 무서워서 개화를 언급하지 않던 사람들(개화파)이 개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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