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9] 누가 누구를 더럽다 해? (Feat. 대본의 진실)
대본 없이 원테이크로 진행하는 영상이라는 점을 양해(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영상에서 언급한 신미양요 당시 조선의 미개함과 열악함, 불결함에 대해 추가로 보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서 교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교훈이 현재의 나에게 반영해 보고, 미래를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과거의 상황을 지금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당시의 상황과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의 후진성과 미개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게 병합되는 것이 마땅했다고 하면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아가서 일본의 식민통치기에 근대화가 되었으니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믽고에 반역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만약 고려시대나 15세기 조선인들이 유럽에 가면 유럽인들의 불결함에 치가 떨렸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영국의 신사들이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오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었으며 하이힐도 길가의 오물(똥)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신었다고 한다. 프랑스 여인들은 파티 도중에 대소변의 문제 때문에 기저귀를 찼다고 한다. 그리고 냄새를 막기 위해서 향수를 뿌렸다고 한다. 유럽의 17세기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위생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1883년 미국에 보빙사(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로 건너갔던 유길준은 미국과 유럽을 둘러보고 조선에 돌아와서 “암흑의 세상에서 태어났다가 광명의 세계로 가서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왔다”고 표현하였다. 서광범은 미국을 둘러본 후에 일본을 거쳐 조선에 돌아왔는데, 당시 일본이 너무 미개하다고 언급하였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하멜(1630~1692)은 13년간 조선에 억류당했다가 탈출해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13년간 동인도회사의 임금을 받기 위해서 조선에서의 억류했던 일들을 기록하여 『하멜 표류기』를 썼다. 여기에는 조선인이 더럽다는 이야기가 없다. 17세기 네덜란드인 하멜의 눈에 조선은 더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2천년간 중국의 문화적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100여년 동안 우리는 중국을 미개하고 더럽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청결한 나라는 싱가폴과 일본과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1960년대라면 우리의 열악함을 한탄하면서 노력하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21세기 우리나라는 경제력이 13위, 군사력이 9위이며, 앞으로 일본을 앞지를 것이다. 이렇게 발달된 선진 대한민국에 살면서 여전히 조선이 미개했다고 생각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는 당연했다고 조상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학사관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선교사들에 대해 강의하면서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너무 강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민비가 언더우드와 언더우드 부인이 결혼할 때 축의금으로 100만냥을 주었다고 하는데, 100만냥은 당시 조선이라는 국가 1년 예산의 1/4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언더우드가 나름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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