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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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4

[병자호란14] 흔적 [병자호란14] 흔적 인조는 하늘에 삼배구고두례, 홍타이지에게 삼베구고두례, 그리고 홍타이지에게 옷을 하사받고 이베육고두례를 하였다. 총 24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떠나면서 ‘내가 조선을 정벌했음을 알리는 비를 만들어라’고 명령하였다. 우리 민족이 외적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던 흔적은 이전의 역사에도 있었다. 3세기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공격해서 국내성을 점령하고(동천왕이 동해안까지 도망감) 비석을 세웠다(관구검 기공비). 백제가 망했을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592~667)이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백제를 정벌했다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것 때문에 정림사지 5층 석탑이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다(백제를 정벌한 기념탑).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화 비석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2021. 7. 4.
[병자호란12] 원균을 넘어서는 최악의 똥별들 [병자호란12] 원균을 넘어서는 최악의 똥별들 강화도의 북쪽 갑곶에는 충청도 수사 강진흥(?~1637)이 판옥선 7척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인 광성보에는 강화유수 장신(?~?)이라는 인물이 판옥선을 27척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다. 강화도를 점령한 인물은 누르하치의 아들이자 홍타이지의 동생인 도르곤(1612~1650)이었다. 도르곤이 1만 6천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강진흥의 수군은 건너편 육지에서 쏘는 포(홍이포)에 의해 수세에 몰렸다. 그래도 강화해협을 건너려는 청나라 군대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광성보를 지키는 장신이 도우러 올라갔어야 하지만 장신은 모른척 하였다. 장신의 부하 구원일(1592~1637)이 칼로 장신을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였다. 구원일.. 2021. 7. 4.
[병자호란7] 청 기병의 진격의 속도전 [병자호란7] 청 기병의 진격의 속도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에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당당했던 인조에게 최명길이 한마디 한다. “곧 겨울이 되면 강이 얼텐데, 그러면 저들의 기병이 쉽게 우리 땅에 들어오려고 할텐데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보낸 문서 “이제 짐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의 8도를 무찌르려고 하는데, 네가 부모처럼 섬기는 명나라가 장치 어떻게 너희를 구해주는지 보고 싶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구원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니, 억조의 많은 사람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만일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소상하게 알려라.” 전쟁의 책임은 근자감으로 깐.. 2021. 5. 18.
[병자호란6] 청 태종, 조선을 침략하다. [병자호란6] 청 태종, 조선을 침략하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고, 1619년 명나라와 조선이 사르후 전투에서 x박살났다. 사르후 전투에 군대를 보내기는 했지만 나름 중립외교를 폈던 광해군(1608~1623)이 1623년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고, 이듬해 1624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평안도의 방어선이 약화된다. 후금은 지속적으로 산해관을 뚫으려고 하다가 1626년에 영원성 전투에서 명나라의 원숭환(1584~1630)에게 누르하치가 패하고 죽게되자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인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이듬해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공격한다(정묘호란). 이때 한양까지 점령당하고, 인조는 강화도로 튀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화약’을 통해 후금은 물러간다. 후금은 조선에게.. 202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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