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통한의 한미연합작전
버드가 이끄는 미 전략첩보국 대원 18명과 이범석, 장준하, 노농서, 김준엽 등 광복군 국내정진군 4명을 태운 미군 C-47 수송기가 18일 새벽 3시 30분 시안 비행장을 이륙했다... 장준하는 1971년 펴낸 회고록 〈돌베개〉에 비행기에서 내려 조선의 땅을 밟은 시간을 18일 오전 11시 18분이라고 적었다. (305)
미군이 추진한 독수리 작전팀의 경성진입은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나쁘게 말하면 욕심이 앞선 것이었다... 일행은 착륙과 동시에 중무장한 일본군에 둘러싸였다.
현장에 나와 있는 것은 고즈키 요시오 사령관과 이하라 준지로 참모장 등 제17방면군 수뇌부들이었다...
버드는 자신이 조선 땅을 최초로 밟은 연합국 장교로서 조선을 해방시켰다는 명예를 얻기 원했다. 그래서였는지 이번 작전에 전쟁정보국의 기자 하워드 리버먼을 동행시켰다. 자신의 활동을 기록해 워싱턴과 전세계에 알리려는 ‘언론 플레이’를 시도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전구전략첩보국 사령관 리처드 해프너의 명령을 위반한 것이었다...
험악한 분위기에 압도된 버드는 일본군이 아직 미군에 협력할 의사가 없음을 깨달았다... 버드는 일본군에게서 돌아갈 비행기에 채울 기름을 얻어 19일 경성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전략첩보국은 20일 귀환한 대원들에게 “다시 경성에 돌아가 일본군에 잠시 억류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에 머물라”고 명령했다. 버드는 “일본군이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탱크 등으로 위협하면서 경성을 떠나라고 했다”며 반대했다. 버드는 22일 오후 충칭으로 날아가 웨드마이어 사령관에게 작전팀이 다시 경성으로 진입하면 대원 22명이 처형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버드가 경성에 데리고 간 전쟁정보국의 리버먼이 쓴 기사가 공개된 것이다... 웨드마이어를 더 역겹게 한 것은 버드가 전쟁정보국 기자와 사진기자를 데리고 가면서 한반도 내 포로수용소에 머무르고 있을 미군과 연합군 포로들을 위한 식량과 의약품을 챙겨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분노한 웨드마이어는 더 이상 전략첩보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조선 내 연합군 포로 구출 계획에서 독수리 작전을 완전히 제외하라고 명령했다... 애초 이 팀이 수행하려고 했던 연합군 포로 구호ㆍ송환 등의 업무는 이제 곧 한반도에 진주하게 될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제24군단이 떠맡게 될 터였다. 독수리 작전팀은 10월 1일 공식 해체됐다. (305-309)
임시정부 요원들은 비행기에 오르기에 앞서 자신의 귀국이 ‘개인자격’임을 서약하는 서면동의서를 제출했다. 김구가 경성에 도착하기 나흘 전인 11월 19일, 웨드마이어에게 보낸 서한은 다음과 같다.
“이제 본인은 본인 및 동료들이 어떠한 공적 위치로서가 아닌 완전히 개인의 자격으로서 귀국을 허락받은 것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음을 귀하에게 확신시키고자 합니다. 나아가 본인은 한국에 들어가면 우리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정부로서 혹은 민간 및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는 기구로서 활동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꺼이 진술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한국인에게 유리하게 될 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어 미군정과 협력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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