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홀리데이 / 2006.1.19. 개봉
극장에서 봐야 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한 영화들이 참 많다. 그러한 영화를 인터넷에서 혹은 비디오나 DVD를 대여해 보면서, 뒷북 같지만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소감을 누리꾼들과 나누고자 한다.
<홀리데이>는 서울올림픽 세계 4위라는 쾌거를 이룩한 감격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시작한다. 물론 국민들에게는 감격과 영광의 시대였지만, 어두운 이면에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이 치유되지 않고 곪아 썩고 있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평화의 제전인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는 역설적인 장면은 관객에게 도덕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과거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공권력이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많이 경험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 않으면 TV에서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공권력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사회적 통념상 탈주범은 죄인이고 그를 쫓는 경찰은 정의의 사도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거꾸로 묘사하고 있다. <홀리데이>에서 탈주범으로 등장하는 지강혁(이성재)은 죄를 지었지만 보호감호법에 따라 형량을 무겁게 선고받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반면 지강혁을 비롯하여 죄수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악독한 경찰관 김안석(최민수)은 무자비한 공권력을 상징한다.
친동생 같은 주환(설성민)을 죽인 김안석이 지강혁이 복역하고 있는 교도소의 교도관으로 오면서 영화의 긴장 관계가 한층 고조된다. 악독한 교도관이 등장하면서 죄수 간 갈등과 시비는 사라지고 죄수들은 고난을 겪는 형제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김안석의 횡포와 사회적으로 돈 많은 지도자들이 엄청난 죄를 짓고도 활개 치는 세상은 지강혁과 동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고칠 수는 없지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기 위하여 그들은 탈출을 결심한다.
결국 그들은 치밀한 작전으로 이감 중 탈출에 성공한다. 그 와중에 지강혁 일당은 김안석을 처치하지 못하고 부상만 입힌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김안석을 살려둔 것이 지강혁 일당에게는 뼈아픈 실수로 보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안석은 지강혁 일당을 끝까지 쫓아가서 제거하려 한다.
지강혁 일당 중 대철(이얼)과 광팔(김동현)은 홍콩으로 밀항을 시도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나머지는 전직 대통령이 있는 연희동으로 갔다가 북가좌동의 가정집으로 들어가서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이 중 나이 어린 민수(여현수)는 경찰에 생포되고, 나머지 두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혼자 남은 지강혁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며 사회를 향한 울분을 토해낸다. 그는 마지막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지 못한다. 지강혁의 남은 목숨은 김안석의 총으로 마무리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때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화 배급 문제로 조기종영 위기도 맞았다. 그 결과 <홀리데이>는 <왕의 남자>의 흥행을 이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관객 200만명).
<홀리데이>는 마지막에 자막을 내보내 '보호감호법'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정규형량보다 긴 보호감호법은 이 영화를 제작하고 있던 2005년 6월에서야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현실은, 지금도 우리가 그들이 느꼈던 상실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직도 좌절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 영화를 보호감호법에 의해 피해 받은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자막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이 몰입한 상황과 약간 동떨어진 전개라는 생각이 든다.
보호감호법이란 수감된 재소자가 재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수감생활을 마치고 난 뒤 일정 기간 감호소에서 머물도록 한 조치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지강혁이 보호감호의 폐단으로 탈옥했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보다는 교도관의 악행과 돈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탈옥을 했다는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흔히 인질극을 다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은 <홀리데이>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인질극 상황에서 인질들이 그들을 풀어주려는 군이나 경찰보다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심리상태인데, 이는 ‘지강헌 사건’ 당시 인질이 되었던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범죄자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지강혁의 마지막 대사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함축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비열하고 야비한 공권력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언론과 사람들은 비열한 공권력에만 박수를 보내는 사회가 오늘 우리 사회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홀리데이>는 작품의 무게와 완성도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지만 극장에서 못 본 사람들은 비디오나 DVD를 대여해 뒤늦게나마 영화의 진가를 확인하고 있다.
탈출부터 사살까지 8박 9일간의 일정은 그야말로 지강혁 일당에게는 괴롭고 힘들었던 고난의 삶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휴일과도 같은 날들’이었을 것이다.
<홀리데이> 명대사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있어야지. 적어도 우리에겐 그럴 자격은 있잖아.” - 지강혁(이성재)
“죄 있어도 돈 있으면 무죄!! 죄 없어도 돈 없으면 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게 바로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X같은 법이다!!!” - 지강혁(이성재)
“세상이 너 같은 쓰레기를 기억해 줄 껄로 생각하니?” - 김안석(최민수)
<홀리데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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