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슈퍼스타는 누구인가?
슈퍼스타 감사용 Mr. Gam's Victory , 2004 제작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은퇴 투수는 총 758명이다. 그중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126명 뿐이며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이다. 나머지 327명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당신의 1승, 이제는 온 국민이 당신을 응원합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2004년 9월,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개봉했지만,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관객 32만 3000명, 전국 누계 78만 6000명의 흥행 성적은 어딘지 모르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적어도 백만 관객은 돌파해야 간신히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영화팬들에게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한 이 영화가 나에게는 특별한 영화로 남아 있습니다.
1982년 'MBC 청룡' 이종도 선수의 만루홈런으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수놓았습니다. 그중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승리의 주역이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가 있는 반면에, 패배로 인하여 좌절과 눈물을 흘리며 사라져 간 선수들이 있습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파란만장한 한국의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별로 뛰어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성적으로 보면 별볼일 없는 한 선수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감사용이라는 투수는 키 170cm, 몸무게 70kg, 작은 손, 왼손잡이로 투수로 성공하기에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선수였던 감사용은 프로야구의 출범 당시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빈약한 선수층 덕분에 발탁되는 행운의 사나이였습니다. 왼손 투수가 없는 투수진의 보강을 위해서 뽑힌 감사용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개막 초반부터 강력한 꼴찌 후보였던 팀은 그에게 ‘패전 처리’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패전 처리’는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운드에 오르기 전부터 패배가 결정되어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공을 던져야 하는 감사용의 심정이 되어보면, 오늘날 불필요한 일이 주어진다고 불평을 하던 나의 모습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점수차가 벌어져서 추격의 의지도 사라지고 정규방송 관계로 TV 방송은 중단되는 시점에서 팀의 ‘패전 처리 투수’로 등장하는 감사용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나머지 이닝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감사용의 등장 시점을 게임 포기 시점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가 등장한 이후, 친구들과 당시 프로야구 경기를 회상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감사용이 나올 때 해설자가 '패전 처리 투수'라고 실제로 말했었나?”
“몰라, 하여튼 삼미 슈퍼스타즈 경기는 장명부라는 너구리 투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TV에서 거의 중계도 안 했었어.”
“그만큼 삼미의 경기는 재미가 없었지.”
“나중에는 너무 지니까. 오히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던데.”
“감사용이 등장하는 시점은 꼭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마칩니다’ 이런 멘트가 나왔었지.”
“그만큼 이후의 경기는 볼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지.”
“경기를 포기한다는 감독의 의사표현이었지.”
“너무 늦게 경기를 포기했던 것 같아. 시작부터 게임은 이미 포기상태였는데….”
“여하튼 삼미 슈퍼스타즈에게 패하는 팀은 엄청 쪽팔렸을거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내가 보기에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좋은 영화였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30대 중 후반의 우리들에게는 감사용이라는 투수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젊은 세대들에게 감사용이라는 투수는 낯선 사람입니다. 그리고 스포츠 영화이면서, ‘삼미 슈퍼스타즈’, ‘감사용’ 그리고 당시 ‘양승관’, ‘임호균’, ‘김무관’ 등의 삼미 선수들을 모르면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저는 아내와 같이 영화를 봤습니다. 당시에 영화를 보면서 저는 “아하~ 맞아!”, “저런 일이 있었어…”, “저 선수는 저런 스타일이었어…” 이렇게 감탄을 하면서 당시 선수들의 이름과 상황을 생각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봤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사전적인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재미에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감사용이라는 한 사나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내내 일등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을 던지는 감사용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 주어진 환경만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사용의 어머니가 감사용이 소속한 팀의 경기를 모조리 관람하면서 외롭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가는 감사용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말합니다.
“사용아 어깨 좀 펴라… 그게 뭐니? 남자가… 난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서 니가 제일 멋있더라야. 이 세상 사람들 다 변해도, 엄마는 언제나 니 왕팬이다~.”
감사용과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 좌절 속에서 허덕이던 백수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없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커다란 꿈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꿈과는 거리가 먼 가슴이 답답한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이 따위 밖에 아니었나?’
이런 생각에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의 부모님들은 어디 가서 주눅들까봐, 그리고 행여나 상처받을까봐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기도로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쉬고 있지만 기회만 오면 뭔가 해낼 녀석입니다”라고 믿어주셨습니다.
결국 감사용은 당시에 연승행진 신기록 작성 중이던 진정한 슈퍼스타 박철순과 선발 대결을 펼칩니다. 물론 실제 그런 상황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경기를 통해서 영화 속의 감사용은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홈런을 맞고 울면서 외친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꼭 이기고 싶었어요… 이길 수 있었어요…”
감사용의 절규는 계속 내 마음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몇 걸음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나도 그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도 내 인생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것은 해낼 수 있었는데, 기회조차 오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면서 주인공 감사용 역을 소화해 낸 이범수가 왼손잡이 투구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맡은 역을 소화해 내는 프로 정신이 녹아있기에,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심정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역의 김수미는 묵묵히 아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간간히 등장하는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 또한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완성도를 향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박철순은 원년에 22연승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감사용이 이겼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인물인 감사용 씨는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스타가 된 기분이라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1등보다 꼴찌가 더 많은 세상, 비록 꼴찌의 자리에 있다 해도 결코 그들의 인생마저 꼴찌는 아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꼴찌팀에서도 꼴찌였던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다.”
비록 경기에는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꼭 승리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삶의 악조건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슈퍼스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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