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6-2] 양녕처럼 살 것인가, 세종처럼 살 것인가? 2편(이게 진짜)
[세종의 삶]
세종은 몸이 비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육식을 엄청 좋아했다. 오죽하면 태종이 죽기 직전에 세종이 삼년상을 치르더라도 고기를 먹게 하라고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여색도 밝혔다.
세종의 질병은 28가지라고 한다. 한때 세종은 자신의 몸을 ‘저주받은 몸뚱아리’라고 스스로 한탄하기도 했다. 아마도 오늘날로 따지면 당뇨에 합병증으로 고생한 듯 하다.
집안의 불화를 목격하고 왕이 되었다. 할아버지(이성계)와 아버지(이방원)의 불협화음도 경험했고, 삼촌들이 역적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것도 보았다. 장인어른의 집이 몰락하는 아픔도 경험했다.
왕이 된 이후에 정종이 죽고, 어머니인 원경왕후도 죽고, 아버지인 태종이 죽으면서 상주로 삼년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자식들 중에 세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부인도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경험했다.
세종의 아들 중에 자신을 빼닮은 문종은 뛰어난 인재였지만 몸이 허약했다. 둘째인 수양대군은 자신의 아버지를 빼닮았다. 그러나 장자인 문종을 세자로 세워서 조선왕조에서 장자세습의 모범을 보였어야 하는 강박관념도 있었을 것이다.
문종의 아내는 세 명이었다. 첫째 휘빈 김씨는 질투심 때문에 ‘압승술’로 세자와 사이가 좋은 후궁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등의 행동을 하다가 들통이 나서 사가로 쫓겨나 자결한다. 둘째 순빈 봉씨는 동성애에 심취해서 사가로 쫓겨나 자결하게 되었다. 셋째 빈궁 권씨는 단종을 낳다가 죽어버렸다. 이후 사대부에서는 감히 문종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종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 중전이 없는 왕으로 살았다고 한다.
[양녕의 삶]
반면 양녕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한량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의 양아치 같은 삶이었다. 처음에 복잡한 가정사와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왕 자리에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다. 충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한때 세자였고, 왕의 형으로 살아가는 양녕의 삶은 대접받는 삶이었다. 조선 팔도에 첩들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수양대군을 왕으로 세우는 데 종친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단종을 죽이는데 앞장선다. (이것이 양녕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양녕은 자신의 셋째 아들의 애첩도 건드리는 또라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살아서는 한 나라의 왕 세종의 형으로 살았고, 죽어서는 부처(효령대군)의 형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양녕의 후손중에 이승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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