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5] 태종 이방원 vs All of them
정몽주를 스승으로 모시는 사림이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이방원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성계 아들은 총 8명이었다. 이들 중에서 무인의 기질을 타고 난 아들은 둘째 아들 이방과(훗날 정종)이다. 이방원은 과거 문과에 급제한 인재였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정도전과 신덕왕후가 합세해서 세자를 이방석으로 앉혔다. 점차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던 이방원은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하려고 하면서 사병을 혁파하려고 할 때 제1차 왕자의 난(1398)을 일으켜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정도전까지 죽였다. 이때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난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거꾸로 이방원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이방간이 박포가 꼬임이 넘어가 쿠테다를 일으켰고 이것을 제2차 왕자의 난(1400)이라고 한다. 당시 이방원의 주변에는 하륜(1347~1416), 이숙번(1373~1440) 등의 인재들이 있었다.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이방원은 차마 친형제인 이방간(1364~1421)은 죽이지 못하고 유배를 보냈지만 박포는 사지를 찢어서 죽였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왕권이 강화되면 기득권세력이 약화되면서 백성들의 삶이 안정된다. 그런 점에서 태종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 노비변정사업(사병혁파, 조세증가)
- 사간원 독립
- 6조직계제(조선시대를 통틀어 태종 이방원과 세조 수양대군)
- 창덕궁 건립
- 한양 재천도
- 양전사업(양안작성)
- 호패법, 호적사업
- 사원재산몰수
- 공도정책(섬에 있는 백성들을 육지로)
- 신문고 설치
이방원의 아내 원경왕후, 그리고 처남들(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은 이후 불행한 삶을 맞이한다. 이방원이 세자를 양녕으로 삼아 양위하려고 할 때 민무구, 민무질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방원은 민무구, 민무질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들의 형(민무구, 민무질)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말한 민무휼과 민무회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
이후 태종은 세자를 충녕으로 바꾸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군사권은 세종에게 물려주지 않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려고 이종무를 보냈다(1419). 그리고 거북선의 모델이 되는 비거도선을 설계하였다.
세종의 장인 심온(1375~1418)이 영의정이 되어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역적으로 몰아서 심온을 죽이고 심온의 가족을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세종의 왕위를 위협할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린 것이다. 어쩌면 세종의 태평성대는 태종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종 이방원과 박정희는 비교될까? 태종은 군주제의 군주이고 박정희는 공화제의 대통령이다.
군주제의 주인은 왕이고 공화제의 주인은 국민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주인인 국민을 괴롭히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원은 나름 존중할 수 있지만, 박정희는 존중하기 힘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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