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꾸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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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일본의 작가 엔도슈사꾸의 소설이다. 17세기 일본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일본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었는가를... 그리고 오늘날 일본 사람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책이다. 특별히 이 책은 책방에서 서 있는 상태로 단숨에 읽어버린 책으로 다 읽고 나서 소장하기 위해서 산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함께 엔도가 쓴 다른 책들도 함께 읽어보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해의 언저리]
[예수의 생애]
[그리스도의 탄생]
기독교(천주교)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여러 나라로 뻗어나갔다. 그 와중에 동방의 섬나라 일본에까지도 전파되었다. 모든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던 페레이라 신부가 일본에서 배교했다는 소식을 들은 로드리꼬 신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 사실의 진상을 알아보고, 일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박해받는 신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출발한다. 일본으로 향하는 로드리꼬 신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신뢰와 배교 소식에 대한 어떤 배신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꼬 신부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며 결국 그 자신도 배교하게 된다. 17세기 일본의 상황은 주인공이 고국을 떠날 때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의 신앙적 이론은 일본이라는 현실적 장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렸고, 하나님의 침묵은 결국 주인공의 영웅적인 순교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종교가 어느 문화 속에 전파될 때, 그 본질은 사라지고 종교라는 빈 껍데기만 전파될 수 있다. 간혹 본질이 전파되더라도 크게 굴절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성은 예수가 생존했던 지역, 시대를 포함하여 모두 다 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인 17세기 일본에도, 개화기의 우리나라에도, 심지어는 초대 교회의 헬라 지역이나 로마 제국에도...
인간이 자신의 철학, 사상, 종교적 신념이 부정되는 것을 경험한다면, 그 이후에는 더 철저한 맹신 혹은 철저한 포기의 두가지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페레이라 신부는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을 고문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신도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듣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을 외면하고 혼자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하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너무 괴롭힌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순교'는 가장 최고의 영광스러운 일이고 순교자는 신앙의 승리자, 영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순교를 통해서 신앙적인 승리, 영웅적인 죽음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바로 [침묵]에서 엔도 슈사꾸는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승리자, 영웅은 누구인가?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역사 속에 남겨지는 영웅이 되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자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자신 스스로가 지옥의 밑바닥을 선택하는 자인가?"
내가 만난 기독교의 하나님은 결코 승리자와 강자들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진정으로 약한 자들을 사랑하시며, 그 자신이 약하게 되어 약한 자들 안에서 겁장이의 모습으로 존재하시며, 강한 자들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시는 행위를 통하여 약한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연대하시고, 그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는 분이시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엄청나게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기독교를 박해하는 초대교회에 태어났다면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기독교를 헌신짝처럼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나같은 나약한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시대를 골라서 태어나도록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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