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1] 바보 온달인가? 대장군 온달인가?
- 4세기 - 백제 전성기
- 5세기 - 고구려 전성기 (고구려 vs 나제동맹)
- 6세기 - 신라 전성기 (여제동맹 vs 신라)
- 7세기 - 삼국통일기 (돌궐-고구려-백제-왜 vs 신라-수ㆍ당)
6세기에 고구려는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안장왕, 안원왕, 양원왕, 평원왕). 이 시기에 고구려 내부에는 귀족들의 다툼이 있었다. 이 시기에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탈환한다. (이후 신라가 뒤통수 쳐서 한강 하류까지 장악한다.)
6세기에 신라에는 엄청난 왕들이 등장한다.
지증왕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신라라는 국호를 사용하였으며, 우산국을 복속하였고, 순장을 금지시켰으며 동시(시장)를 설치했다. 법흥왕은 신라의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시킨 왕이다. 그리고 신리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시킨 진흥왕이 등장한다. 이후 즉위한 진지왕은 신라 화백회의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진지왕의 형인 동륜태자의 아들인 진평왕이 등극한다.
진평왕은 스스로 석가의 피가 섞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백정’이라고 했는데, 석가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백정왕’이라고 했고, 자신의 부인을 석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고 했다. 당시에 진평왕은 신라 왕족이 석가의 집안이라는 ‘진종설’을 믿고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가 진평왕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성골과 진골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신라 진평왕 때 고구려가 신라를 쳐들어오게 되는 데, 우리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로 잘 알고 있는 온달이었다.
고구려의 평원왕(평강왕)의 딸인 평강공주가 결혼한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아마도 당시 귀족 세력의 반대편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당시에 ‘바보’라는 평판은 자신의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인물을 떠올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온달은 평강왕이 죽은 뒤에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진흥왕이 점령한 한강 상류(태조왕이 복속했던 동예의 땅)인 죽령 이북의 땅을 되찾아 오겠다고 말한다. 온달은 신라를 공격하면서(590) 관을 메고 출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죽령 이북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온달은 전쟁 중에 활을 맞고 전사하였는데 그 위치는 1) 광진구 아차산성 혹은 2) 충청도 온달산성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평강공주가 전장으로 찾아와서 온달의 관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니 관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 진평왕은 고구려의 공격을 계속 받고 있었다. 진평왕은 당시 신라 최고의 승려인 (화랑도의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법사(542~640)를 불러서 수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는 글을 써달라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처지인 원광법사가 걸사표(611)를 써서 수나라로 보냈고, 수나라가 이듬해(612) 고구려를 침략하게 된다.
'[영상 & 유투브] > [황현필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통일3] 21세기 용중(친중)은,,, 사대? 중립외교? (Feat.무서운 북방민족?) (0) | 2021.07.04 |
---|---|
[삼국통일2] 15분만에 끝내는 중국사(중국왕조를 우리나라 왕조와 매치업) (0) | 2021.07.04 |
[병자호란14] 흔적 (0) | 2021.07.04 |
[병자호란13] 삼전도의 굴욕 (0) | 2021.07.04 |
[병자호란12] 원균을 넘어서는 최악의 똥별들 (0) | 2021.07.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