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14] 흔적
인조는 하늘에 삼배구고두례, 홍타이지에게 삼베구고두례, 그리고 홍타이지에게 옷을 하사받고 이베육고두례를 하였다. 총 24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떠나면서 ‘내가 조선을 정벌했음을 알리는 비를 만들어라’고 명령하였다.
우리 민족이 외적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던 흔적은 이전의 역사에도 있었다. 3세기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공격해서 국내성을 점령하고(동천왕이 동해안까지 도망감) 비석을 세웠다(관구검 기공비).
백제가 망했을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592~667)이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백제를 정벌했다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것 때문에 정림사지 5층 석탑이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다(백제를 정벌한 기념탑).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화 비석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인조는 네 명의 관료에게 글을 쓰게 하였는데, 이경석(1595~1671)의 글이 채택되었다. 청나라는 이것을 몽고어와 만주어로 번역을 하였다. 이 삼전도비는 롯데월드 롯데타워 사이에 있다.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조선 왕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우리 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청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삼전도비를 묻어버리지만, 일제가 다시 그것을 꺼낸다. 6ㆍ25전쟁 때 수많은 포탄에도 불구하고 삼전도비는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다. 1955년 이승만 정권 때 삼전도비를 다시 묻어버렸는데, 비가 와서 삼전도비가 드러나게 되었다. 장면 내각에서는 수치스러운 역사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하면서 이 삼전도비를 다시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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