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수립10-2] 김구의 치명적인 실수 2편
김구 선생이 반탁운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였을 것이다. 김구는 반탁운동을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과 병행하여 진행했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따랐던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이 반탁운동을 하게된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김구의 반탁운동과 이후 이승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당시 정황에 대한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어쩌면 남한의 대통령을 이승만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김구의 능력 부족 때문일 지도 모른다. 김구는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1946.3~5)에서 소련은 반탁운동을 하는 세력을 배제하자고 어거지를 부렸고, 미국은 모든 사회단체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합의점을 못찾고 휴회를 하게된다.
당시 민족의 지도자들은 분위기상 이러다가는 분단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분단’을 언급하는 지도자는 없었다. 그런데 이때 민족지도자들 중에 처음으로 분단을 언급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1946년 6월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북쪽에서 소련이 물러가도록 세계 여론에 호소하자는 이른바 ‘정읍발언’을 하게 된다.
이승만의 전읍발언은 당시 민족의 지도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중도 세력이 정신을 차리고 김규식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운동(1946.7)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반공교육에 투철했던 역사교육의 시대에서는 ‘좌우합작운동’을 저평가하면서 김규식도 빨갱이였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어떻게든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민족의 노력으로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
먼 훗날 통일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과거의 역사인 오늘의 상황을 놓고 남북이 화해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반공의 틀에 빠져서 빨갱이 타령을 하던 것 중에 어떤 것이 올바르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좌우합작운동은 좌우합작위원회를 설치하고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임시정부 구성’과 ‘미소공위의 속개’였다. 어떻게든 분단을 막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우익의 김규식도, 그리고 극우라고 분류되던 송진우도 신탁통치를 찬성하면서 분단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김구가 정신을 못차리고 이승만과 함께했던 것이 우리 역사의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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