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20] 동학3 - 우금치 전투(눈물 주의 그러나 멋있음)
1894년 4월 동학농민군 1차 봉기 : 반봉건
1894년 9월 동학농민군 2차 봉기 : 반외세
1차 봉기 때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은 전봉준에게 반대하였다. 그런데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자 2차 봉기 때는 최시형도 동참하기를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최시형의 명을 받은 손병희가 북접을 이끌고 논산으로 내려왔고, 남접의 전봉준과 연합하였다.
논산에서 2만 명의 동학군이 죽창 들고 짚신 신고 공주로 진격해 올라갔다. 이때 조선 정부에서는 관군과 일본군이 진압하러 내려왔다. 동학군은 우금치 고개에 매복해 있는 관군과 일본군을 정면돌파해서 뚫고 진격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 관군은 미국에서 만든 신식무기(개틀링 기관총)을 갖고 있었다. 결국 우금치에서 1만 7천명이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동학군은 죽음도 불사하고 끝까지 우금치 정상을 향해 죽창들고 기어 오르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당시 조선 관군으로 동학군을 진압하러 내려온 이규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며 죽음을 무릎쓰고 앞을 다투어 기어오르는 저들은 무슨 의리이고 무슨 담략인가. 저들의 행동을 말하고 생각함에 뼈가 떨리고 마음이 서늘하다.”
시인 신동엽(1930~1969)은 동학군을 생각하며 “동학년 곰나루의 함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썼다.
이후 을미의병(1895),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1907)은 게릴라전으로 일본에 저항한 것이다. 세계사에서 당시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은 나름대로 중과부적이지만 국가의 군대가 제국주의 군대의 침략에 맞서서 저항해보고 식민지로 넘어갔지만, 조선의 관군은 단 한번의 저항도 하지 않았다. 국가가 하지 않으니 1894년에 농민들이 일어난 것이다.
1894년 12월,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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