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17] 큰 손 명성황후? 배고픈 전봉준?
동학농민운동은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하는데 1894년에 일어났다.
1863~1873년 : 대원군 집권기
1866년 - 병인박해, 병인양요
1871년 - 신미양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1980년대 초반 개화정책 추진한다. 이때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개화정책을 총괄한다. 5군영을 2영으로 축소하고 별기군을 창설한다. 일본에 수신사, 조사시찰단 파견하고 청에 영선사 파견하면서 나름 개화정책을 진행하게 된다.
1882년 구식군대의 불만으로 인한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청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된다. 갑신정변은 최초의 정치개혁운동이었으며 입헌군주제 주장하였다.
한편 ‘동학’은 1860년에 경상도 경주 지역의 몰락 양반인 최제우(1824~1864)가 창시하였는데, 서학에 반대하는 의미로 ‘동학’이라고 이름하였고,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평등을 강조하였다가 결국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처형되었다.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1827~1898)은 각 지역에 포주와 접주를 설치하여 포교활동을 하였다(포접제). 그리고 성경에 해당하는 ‘동경대전’과 찬송가에 해당하는 ‘용담유사’를 집필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다시 정권을 잡은 ‘민씨척족정권’은 안그래도 개판인 나라를 더욱 개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호포법을 폐지하고 매관매직을 노골적으로 시행하였다. 민비는 개인적으로 나랏돈을 흥청망청 사용하였다. (갑신정변 때 부상당한 민영익을 고친 선교사 알렌에게 20만냥을 주었으며,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가 민비의 주치의였는데, 언더우드와 결혼할 때 당시 돈으로 100만냥을 축의금으로 주었다고 한다. 100만냥은 당시 나라 예산의 1/4~1/5였다고 한다)
일본과는 임오군란으로 제물포조약(1882년), 갑신정변으로 한성조약(1884), 방곡령 사건(1889)으로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는데, 이 배상금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이러한 때에 동학이 점차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교세가 늘어나고 있었다. 동학은 교세가 늘어나자 자신감을 가지고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였다. 1893년에 복합상소를 올렸을 때 조선의 조정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을 했으나 동학교도들이 해산한 후에 동학교도들에 대한 척살령을 내려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보은집회 이후 동학의 모임은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척왜양창의’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2대 교주인 최시형은 나름 조선 정부와 타협해서 종교의 자유를 원했으나, 전봉준(1855~1895) 같은 인물은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자고 주장하면서 ‘반봉건 반외세’를 주장하면서 최시형과 갈등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때 고부군수 조병갑(1844~1911)은 조선후기 백낙신(?~?)과 더불어 탐관오리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데, 자기 아버지의 송덕비를 짓는다고 백성들에게 돈을 거뒀으며,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만들겠다고 농민 동원하였다. 이후 만석보가 완성되자 물을 사용하는 값을 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모친상때 관민들에게 부조금으로 2천냥을 마련하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마을 대표들이 조병갑을 찾아가서 나름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조병갑은 그들을 혹독하게 대했으며 곤장을 때렸다고 한다. 이때 곤장을 맞고 돌아가신 분이 전봉준의 아버지였다.
전봉준은 봉기하였고, 조병갑은 도망쳤다. 전봉준은 관아의 쌀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조선 정부는 조병갑의 다음 군수로 박원명(?~?)이라는 사람을 내려보냈다. 박원명은 나름 전봉준과 타협하면서 안정세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1854~1926)가 노골적으로 조병갑 편을 들면서 백성들이 다시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1894년 3월에 백산에 8천명이 집결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조병갑의 증손녀가 노무현 정권때 홍보수석(조기숙)이었는데 조병갑이 행한 잘못에 대해서 동학혁명군 유족들에게 사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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