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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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이지4

[병자호란7] 청 기병의 진격의 속도전 [병자호란7] 청 기병의 진격의 속도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에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당당했던 인조에게 최명길이 한마디 한다. “곧 겨울이 되면 강이 얼텐데, 그러면 저들의 기병이 쉽게 우리 땅에 들어오려고 할텐데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보낸 문서 “이제 짐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의 8도를 무찌르려고 하는데, 네가 부모처럼 섬기는 명나라가 장치 어떻게 너희를 구해주는지 보고 싶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구원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니, 억조의 많은 사람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만일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소상하게 알려라.” 전쟁의 책임은 근자감으로 깐.. 2021. 5. 18.
[병자호란6] 청 태종, 조선을 침략하다. [병자호란6] 청 태종, 조선을 침략하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고, 1619년 명나라와 조선이 사르후 전투에서 x박살났다. 사르후 전투에 군대를 보내기는 했지만 나름 중립외교를 폈던 광해군(1608~1623)이 1623년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고, 이듬해 1624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평안도의 방어선이 약화된다. 후금은 지속적으로 산해관을 뚫으려고 하다가 1626년에 영원성 전투에서 명나라의 원숭환(1584~1630)에게 누르하치가 패하고 죽게되자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인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이듬해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공격한다(정묘호란). 이때 한양까지 점령당하고, 인조는 강화도로 튀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화약’을 통해 후금은 물러간다. 후금은 조선에게.. 2021. 5. 18.
[병자호란4] 이것이 정묘호란이다.(옷에서 잡음이ㅠ) [병자호란4] 이것이 정묘호란이다.(옷에서 잡음이ㅠ)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자(1616년) 명나라는 후금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서여진의 예허부와 조선과 함께 후금을 공격하였다(1619년, 사르후 전투). 사르후 전투에서 누르하치가 승리하면서 만주(요동과 요서)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사르후 전투 당시 조선의 군주는 광해군(1608~1623)이었다. 광해군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려고 했다. 당시 조선의 관료들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 ‘재조지은’(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광해군은 당시 상황으로 파병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비변사 뿐만 아니라 삼사의 젊은 관료들까지 나서서 파병을 해야 .. 2021. 5. 12.
[병자호란3] 영원성전투(누르하치vs원숭환) 그리고 드디어(?) 정묘호란 [병자호란3] 영원성전투(누르하치vs원숭환) 그리고 드디어(?) 정묘호란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고 1619년에 사르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요동은 물론 요서지방도 장악하게 되었다. 누르하치는 수도를 허투알라에서 요양으로, 그리고 심양으로 옮기면서 지역의 지배권을 착실하게 다져갔다... (무슨 개가 영역표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예전에 금나라를 세웠던 해서여진의 예허부도 누르하치에게 복속되었다. 이때 명나라는 요동과 요서를 장악한 후금이 만리장성을 넘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만리장성의 가장 중요한 관문인 ‘산해관’을 지키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산해관은 웅정필(1569~1625)이라는 사람이 나름 잘 지키고 있었는데 왕화정이라는 멍청한 부하 때문에 제거되었다...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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