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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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51] 원균 은둔설? [임진왜란51] 원균 은둔설?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칠천량 해전(1597.7.15)의 주인공 원균... 이순신의 한산도의 승리보다 더 큰 패배를 안겨준 장수... 그는 과연 칠천량에서 죽었을까? 박정희가 이순신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우고 자신을 이순신과 등치시키려는 것은 솔직히 코메디라고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순신은 어려운 가운데 권력을 차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을 연개소문과 등치시키려 했다. 어찌보면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으니 박정희는 차라리 연개소문을 존경한다고 했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이후 연개소문.. 2021. 4. 28.
[임진왜란49] 원균 재평가? 미치셨나요? [임진왜란49] 원균 재평가? 미치셨나요? 최근 원균의 후손들과 원균의 고향 평택시에서 원균에 대한 재평가를 하려는 작업이 있다. 원균이 재평가를 받아야 할 인물인가? 원균은 임진왜란이 발발할 때 판옥선 74척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1만여명의 병력을 해산하고 튄 인물로, 일본군이 경상도에 쉽게 상륙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인물이다.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의 무능력함도 보여주었고, 칠천량에서 조선의 수군을 바다에 수장시키면서 정유재란이 일어나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원균을 재평가해서 띄우려는 어처구니 없는 평택시에 대한 기사 한국사를 가르치는 선배 중에 1881년에 청나라 무기를 배우기 위해 청나라로 건너갔던 영선사 김윤식(1835~1922)의 고손자인 분이 있다. 1882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났는데, .. 2021. 4. 28.
[임진왜란37] 행 주 대 첩 - 한강으로 화살을 배달하는 이순신?│황현필 한국사 권율의 행주대첩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의 한산도대첩(1592.7) 김시민의 진주대첩(1592.10) 권율의 행주대첩(1593.2) 권율은 늦은 나이(46세)에 문과로 과거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56세로 광주 목사였다. 용인전투에서 말도 안되는 패배를 당했지만 권율은 병력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후 황진과 이치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호남을 지켰고 관찰사로 승진하게 된다. 권율의 1만 병력이 한양을 향해 북상하다가 독산성에 주둔하였는데, 우키타 히데이에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때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했다(1593.1.9)는 소식을 듣고 조명연합군이 한양을 공격할 때 힘을 보태기 위해 한양으로 북상한다. 권율은 관악산 근처에 선거이(1550~1598)에게.. 2021. 4. 25.
[임진왜란36] 권율 장군. 구국의 영웅? 최고의 무장?(Feat. 독산성 전투), 13분순삭ver. │황현필 한국사 권율이 진정 구국의 영웅인가? 최고의 무장인가? 선무1등공신의 자격이 있는가? 임진왜란 발발 이후부터 행주대첩의 승리까지 권율은 뛰어난 활약을 한다. 그런데 행주대첩 이후에 도원수가 된 이후에는 큰 전투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어찌 저런 자가 도원수일까?’라는 언급도 있다. (원래 이순신의 인물평은 냉정하기로 유명하다. 이순신은 그러한 냉정함을 자신에게도 적용하였다.) 솔직히 권율은 뛰어난 무인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뛰어난 지휘관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집안이 금수저 집안이었다. 아버지인 권철(1503~1578)이 영의정이었으니 권율은 젊은 시절에 공부를 게을리하고, 술과 여색을 밝히고 여행다니는 거 좋아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40세까지 백수임에도 불.. 2021. 4. 25.
[임진왜란23] 호남방어전(웅치.이치전투), 육전 최고의 승리? 영웅 이름? 4대대첩으로 바뀌어야 │황현필 한국사 조선이 일본에게 멸망당하지 않았던 전투는 무엇일까? 임진왜란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웅치전투(1592.7.7)와 이치전투(1592.7.8?)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만약 황진(1550~1593)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임진왜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왜군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는데 왕이 도망치고 없었다. (이것이 왜군에게는 멘붕이었다고 한다) 이후 누가 왕을 잡으러 갈 것인가를 놓고 제비를 뽑았는데 고니시가 이겨서 고니시가 선조를 추격하기로 하고, 가토는 함경도쪽으로 가기로 했다. (가토는 함경도에서 선조의 아들 임해군을 잡기도 했다) 4군단 시마즈 요시히로(1535~1619)는 강원도로 진격했고, 3군단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는 충청도를 .. 2021. 4. 16.
[임진왜란20] 역사상 최악, 용인 전투 │황현필 한국사 1592년 4월 13일에 전쟁 발발한 이후에 부산성에서 정발, 다대포성 윤흥신, 동래성의 송상현, 낙동강 방어선에서 박진이 분전하였으나 북상하는 왜군을 막지 못했고, 상주 전투에서 이일이 패하고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면서 임진왜란 개전된 지 20일만에 한양이 5월 3일에 점령을 당했다. 김명원이 한강 방어에 실패했고, 이후 임진강 방어에 나선 김명원과 한응인이 패하고, 평양성을 지키던 윤두수와 이원익이 패배하면서 선조는 일찌감치 의주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등장하여 1차 출정(옥포ㆍ합포ㆍ적진포 해전)과 2차 출정(사천ㆍ당포ㆍ당항포ㆍ율포 해전)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놓고 있었다. 이때 2차 출정의 당항포 해전(6월 5일)과 율포 해전(6월 6일)에서 수군이 승리하고 있을 무..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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