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동안의 광복] 다큐멘터리 광복, 그날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 / 길윤형 지음
8월 16일
여운형의 얼굴을 마주한 이인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민족적 성업을 하는데 단 몇 사람이 사랑방 문을 잠그고 수근대는 수가 어디 있냐” (165)
여운형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
1) 전 조선 각지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ㆍ경제범을 석방하라.
2) 집단 생활인 만치 식량이 제일 문제이니 8, 9, 10월 3개월간 식량을 확보ㆍ명도하여 달라.
3) 치안유지와 (국가) 건설사업에 있어서 아무 구속과 같섭을 하지 말라.
4) 조선 안에 있어서 민족해방의 모든 추진력이 되는 학생훈련과 청년 조직에 대하여 간섭을 말라.
5) 전 조선 각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를 우리 건설 사업에 협력시키며 아무 괴로움을 주지 말라. (172)
여운형은 “머잖아 각국(연합국) 군대가 입성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들어오면 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세계 각국이 우리를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운형은 조선인들이 건준을 통해 스스로의 행정과 치안을 확보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세계 각국이 우리를 주목”해 조선인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해 건국 사업을 도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174-175)
엔도 입장에서 이는 약속위반이자, 용납하기 힘든 기회주의적 형태였다. 15일 새벽 자신은 치안 유지에 협력해 줄 것을 부탁했을 뿐인데, 여운형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건국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운형은 치안유지와 국가건설사업에 총독부가 아무 간섭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5대 요구를 엔도가 받아들였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이 이미 항복한 마당에 조선인이 건국사업에 나서는데 총독부의 승낙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186)
해방정국의 치열한 정치투쟁에서 승리한 우파들은 16일 경성을 뒤흔들었던 ‘소련군 진주’ 소동을 공산주의자 혹은 여운형의 농간이라 매도해왔다... 모략의 주인공은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과 라디오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해방직후 조선에서 이런 공작이 가능한 세력은 많지 않았다. 이정식의 추론대로 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전향한 친일파들이었을까?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19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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