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처음 사람들] 6강. 백정 해방 운동의 선구자, 박성춘 (2) - 이덕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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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처음 사람들] 6강. 백정 해방 운동의 선구자, 박성춘 (2) - 이덕주 교수

by [수호천사]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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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처음 사람들] 6강. 백정 해방 운동의 선구자, 박성춘 (2) - 이덕주 교수

 

 

에비슨 선교사의 치료에 보답하기 위해 교회 출석

 

죽을 병에 걸렸다가 에비슨 선교사의 치료를 받은 박성춘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곤당골교회에 출석하기로 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것을 끈질기게 붙잡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박성춘으로서는 자신이 살아난 것보다 감격적인 것은 자신을 누가 살렸는가라는 것이었다. 임금님의 옥체를 만지던 손으로 천하디 천한 자신을 치료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커다란 감격이었다.

 

박성춘은 1894년에 무어 선교사의 곤당골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교회는 먼저 양반들이 시작했던 교회로, 양반들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서양의 문물에 관심을 가지거나 서양의 언어(영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곳에 백정 박성춘이 출석하기 시작했을 때 교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양반 교인들이 무어 선교사에게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어 선교사는 평등한 교인으로 박성춘을 대해주었다. 무어 선교사의 모습은 세리와 창녀들을 받아주신 예수님처럼 백정이었던 박성춘을 인간으로 대접해 준 것이었다. 이처럼 선교사는 예수님처럼 살기(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하나에 집착하는 하나님, 복음

 

누가복음에는 잃은 것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가복음 15:4, “...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누가복음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누가복음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왜 그렇게 잃어버린 하나에 집착을 하시는가? 본래대로 회복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전체가 되려면 하나가 들어와야 한다. 전체(온전)를 뜻하는 말은 셀렘(Shelem)이고 평화를 뜻하는 말은 샬롬(Shalom)이다. 온전함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를 발견한 박성춘

 

양반들은 결국 교회를 떠나 새롭게 독립해서 교회를 세웠다. 박성춘은 자신 때문에 양반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한편으로 자신을 선택하고 양반들을 포기한 선교사에게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선교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가진 것 없고 가난하고 부족한 자신을 지켜주는 종교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에게 일상생활에서 양보하고 포기하고 낮아지는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사회에서는 조금 낯설은 모습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야 한다. 박성춘은 자기 때문에 빈 예배당을 채우기 위해서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1895~98, 박성춘은 서울과 지방 백정마을을 순회하며 복음전도(1898년 경기도 지역 백정 교인 132)에 힘썼다. 백정으로 태어나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신들을 인간대접 해주는 종교, 이제야 비로소 우리를 인간대접 해주는 종교가 들어왔으니 그것을 믿자고 열심히 전도했다.

 

내세가 아닌 인간화를 추구한 교회

 

곤당골교회에 백정들이 들어오자 떠나간 양반들은 첩장교회라고 손가락질하였다. 이런 자신들 자체가 아직도 교회는 다니지만 참 진리가 태어나지 않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양반이요 엘리트였지만 과거의 인습과 과거의 편견에 아직도 노예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구원받지 못할 자가 악취를 품고 들어왔다가 구원받고 향기를 내는 곳이 교회다. 곤당골교회가 부흥하게 된 원동력은 내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의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곤당골교회는 1898년 대() 정부 백정차별정책 철폐운동 전개하였고 그것으로 인해서 백정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 허락되었다.

 

만민공동회 구국연설을 한 박성춘

 

정교라는 사람은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를 썼는데 그것은 1865(고종 1)부터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할 때가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책이다. 거기에서 189810,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여 시민대표로 구국연설을 한 박성춘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연설 내용까지 기술하였다. ‘임금과 신하 백성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朴瑞陽, 봉출이)19086월 세브란스 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승동교회로 출발하다

 

떠나갔던 양반들도 부흥하는 곤당골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곤당골교회가 화재가 난 후에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1905년 교회를 인사동으로 옮겨 건축하여 승동교회가 되었다. 박성춘은 1911년 승동교회 장로로 선출되었다.

 

 

한국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다른 어떤 종교도 보여주지 못한 평화,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협력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필요하다.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혐오하는 것은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아니고, 선교사들이 전해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되살리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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