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21] 정난정+문정왕후 vs 명성황후, 누가 더 나쁜가? (의외의 결과)
조선은 착했지만 유약했던 인종(1544~1545)이 죽고 멍청한 임금 명종(1545~1567)의 시대를 거쳐 역대급 선조(1567~1608)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명종의 시대에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와 윤원형(1503~1565), 그리고 정난정(?~1565)의 독주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인종이 8개월만에 죽어버린다. 명종이 왕이 된 1545년에 마지막 네 번째 사화가 일어난다.
[조선의 사화]
- 무오사화(1498) - 연산군이 ‘조의제문’으로 증조할아버지(세조)를 욕한 사림을 제거
- 갑자사화(1504) - 연산군이 폐비윤씨의 복수를 함
- 기묘사화(1519) - 조광조의 ‘주초위왕’ 사건
- 을사사화(1545) - 소윤인 윤원형이 대윤인 윤임 일파를 죽인 사건
인종의 어머니가 중종의 두 번째 부인인 장경왕후(1491~1515)였고, 장경왕후의 오라버니가 윤임(1487~1545)으로 인종의 외삼촌이 된다.
중종의 세 번째 부인인 문정왕후는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는다. 문정왕후의 오라버니가 윤원형(1503~1565)으로 명종의 외삼촌이 된다.
조선 왕조에서 왕비를 배출한 가문 중에서 유력한 가문을 살펴보면, 청주 한씨, 여흥 민씨(민자영, 태종 부인 원경왕후, 인현왕후 등), 파평 윤씨(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성종의 부인 폐비윤씨, 성종의 부인 정현왕후, 인종의 모친 장경왕후,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 등이 있는데 윤임과 윤원형은 둘 다 파평 윤씨 가문이었다. 어찌보면 네 번째 사화인 을사사화는 가문의 전쟁이었다.
명종이 즉위한 후에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중종과 명종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16세기는 그야말로 바보같은 세상이 되어버린다. 16세기 수취 체제가 문란해졌다(병작반수제, 공납의 폐단 - 방납, 군역의 폐단 - 방군수포, 환곡제의 고리대화). 심지어 임꺽정의 난(1559)까지 일어났다.
성리학이 조선을 병들게 한 이유 3가지
- 중국 중심 세계관(화이사관, 존화주의, 친명배금, 존명배청)
- 폐쇄적 신분제도
- 위정척사 사상
15세기를 대표하는 임금인 세종과 세조는 불교를 존중하는 임금이었다(개인적으로는 불교신자라고 할 수 있다)
- 세종의 불교 업적 : 내불당을 만듬,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 세조의 불교 업적 : 원각사 건립, 원각사지 10층 석탑, 간경도감에서 『월인석보』 간행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는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불교를 우대하였다. 당연히 성리학자들의 반대가 심했을 것이다. 문정왕후는 승과를 부활시켰고, 보우 대사(1515~1565)를 봉은사 주지로 삼았으며,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가 13살에 사망하자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기도 하였다. 당시에 성리학자들이 절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을 절에 가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윤원형의 부인이었던 정난정(?~1565)은 원래 윤원형의 첩이었는데 본처를 몰아내고 (독약으로 죽였으며) 정경부인(조선시대 1품의 문무관료의 처)이 되었다. 아버지는 양반이고 어머니가 천출 출신의 첩이었던 정난정은 윤원형과 사랑에 빠지면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는다. 노비출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윤원형의 집에 몰려들었고, 정난정이 그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그녀는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불교적인 시각(모든 사람은 부처, 보살)으로 바라보았다. 영의정이었던 윤원형은 정난정의 영향으로 서얼들의 문과 응시를 허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얼의 차별을 없애고자 했던 유일한 정승이 윤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얼차대법(태종) - 첩의 자식을 차별하는 법
- 서얼금고법(성종) - 서얼의 문과 응시를 금하는 법
조선의 신분제도에 반기를 들고, 성리학 이외의 가치관인 불교를 존중한 윤원형과 정난정은 문정왕후가 죽자 평소에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명종에 의해 제거되어 유배를 가게 된다. 금부도사가 사약을 내리기 위해 올 것을 예상하던 정난정은 금부도사가 온다고 착각하고 사약을 먹고 자결한다. 이후 윤원형도 그녀를 따라 죽는다.
이후 성리학자들이 윤원형과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정왕후가 아무리 악하다고 하더라도 조선 왕비의 최강 끝판왕 민비를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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