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속 숨은 이야기 - 서양편] 도시국가 로마는 어떻게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 되었을까? - 최진기
[전쟁사 속 숨은 이야기 - 서양편]은 최진기 강사의 최근 강의로 오마이스쿨에서 볼 수 있다. 유료이긴 하지만 오마이스쿨의 강의는 나름 일반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지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좋은 강의들이 많이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노트에 필기하면서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강] 국가에서 ‘제국’으로
서양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게 제국을 만드는 방법을 묻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Romulus)가 건국한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제국으로서의 로마는 어떻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로마는 어떻게 오랜 시간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로마를 ‘로마이게 한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세계의 거대제국들의 존속기간을 수치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12년(BC 336~323), 진시황의 진나라는 15년(BC 221~207), 몽고제국의 원나라는 97년(AD 1271~1368년), 대영제국은 135년(AD 1783~1918년) 지속되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때부터 치면 현재까지 94년(AD 1918~2021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제국으로 패권을 차지하였다. 비록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 포에니 전쟁이 끝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BC 183년부터 AD 395년 데오도시우스 1세까지를 본다면 587년간 제국으로 패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사를 통해서 왕조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는 청나라(396년), 당나라(289년), 명나라(276년)의 순서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신라(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라고 볼 수 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1453년까지 거의 2천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한편 로마보다 오래 지속된 유일한 나라는 ‘이집트’라고 할 수 있는데(BC 3500~30), 이집트의 문명은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왕국 밖으로 뻗어나가면서 확장을 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편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풍부한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혹한 내부통제로 인해서 문명이 정체되었다고 본다. 닫힌 사회 속에서 계급사회는 외부의 적이 있을 때에는 서로 단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서로 갈등하고 착취와 통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주변이 경쟁을 통해서 성장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먹잇감으로 전락하였다. 이집트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지중해를 통해서 공격하거나, 사막을 통해서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
이집트가 정체된 순간 주변의 강한 세력이 이집트를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BC 332년에 알렉산더에 의해서 식민지배를 받았고(알렉산더 이전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것은 강의에서 빼먹었다), 로마에 의해서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AD 641년에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AD 1844년에는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332년부터 기원후 1922년까지 2254년을 식민지로 살아온 대단한 나라다.
# 국가로! 제국으로!
로마의 지형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개방적인 지형 속에서 경쟁을 통해서 단련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그런데 단순히 개방적 지형과 경쟁만이 제국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그렇지 않은 예로 그리스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고립이 되어 있어도 제국으로 성장한 나라는 영국이나 미국을 떠올릴 수 있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로 성장하고 통일시킬 수 있었던 로마의 힘은 무엇일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를 해석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개방과 경쟁이 어떤 과정에서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지를 알아야 한다) 흔히 로마의 성공 비결로 개방, 경쟁, 관용이라고 말한다. 특히 ‘관용’이라는 것은 수직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있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 관용이다. 그러면 어떤 관계 속에서 로마는 ‘관용’을 베풀었을까?
로마의 세르비우스 툴리우스(BC 578~535)의 군제 개혁은 로마를 한 단계 강한 국가로 만들었다. 세르비우스는 군역의 의무를 귀족만이 아닌 재산에 비례해서 부과하였다.
귀족은 지배하려는 열망이 있고, 부자가 되려는 열망이 있다. 그리고 평민은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롭고 부자가 되려는 열망이 있다.
귀족이 원해서 일으킨 정복전쟁을 평민도 원하고, 평민에게도 이득이 될 때 전쟁의 승리가 제국을 만든다. 그리고 그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평민이 귀족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집트가 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한 원인인 동시에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한 이유가 된다)
로마는 집정관과 원로원으로 구성된 귀족과 평민들로 구성된 민회가 협력과 갈등속에 성장하였다. 도시국가 로마는 주변을 정복한 뒤에 평민 공동체를 소외시켰다. 이때 평민들이 도시 밖으로 철수하였고 귀족들은 자신들만으로는 도시국가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고 판단하고 평민들의 권한을 인정하기로 한다. 평민의 권리를 위해서 로마는 ‘호민관’ 제도를 두었고, 리키니우스법(BC 367)을 통해서 집정관 중에서 한 명을 평민으로 선출하도록 하였으며, 호르텐시우스법(BC 287)을 통해서 민회가 만든 법을 원로원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다.
물론 로마는 포에니전쟁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히려 많은 자영농이 전쟁으로 사망하였고, 영토 확장에 따른 노예 공급이 증가되었으며, 이집트 등에서 저렴한 농산물이 공급되면서 로마의 평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시도한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무산자 국유지의 무상분배를 주장했고, 가이우스 그락쿠스는 곡물 저가 공급, 해외 식민지 토지 분배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역사를 통해서 고립된 사회에서 지배계급에 대하여 피지배계급이 승리하기는 힘들다. (이것이 혁명으로 번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당시 평민들(민중들)의 이익이 제국의 이익에 부합했는가?
# 시이저의 개혁 정책
그라쿠스 형제는 실패했지만 시이저는 나름 성공했다. 시이저가 140만 헥타르의 국유지를 나눠준다고 하였을 때 귀족들이 차명으로 국유지를 대량으로 매입하였다. 이때 토지를 얻지 못한 평민들은 군에 입대하여 시이저와 함께 정복전쟁(갈리아 원정)으로 출정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실업자가 되었지만 이때 차명 귀족의 국유지를 시이저가 강제로 몰수하고 퇴역군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주었다. 어쩌면 시이저는 당시에 평민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모습을 통해서 제국의 이익인 영토 확장을 수행한 것이다.
시이저는 이후 민중의 대변자에서 전체 로마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질적 황제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였다. 오늘날에는 대단히 중요한 직업이지만 당시에는 별볼일 없던 교사와 의사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고, 북이탈리아 주민에게 시민권을 주었으며, 국가가 곡물을 일정량으로 매입하여 곡물 가격을 안정화 시켰다. 그리고 수도를 재정비하는 일도 하였다. 금융 개혁을 실시하여 이자율을 12%로 조정하였고, 사법 개혁을 단행하고 달력을 개정하는 등 로마가 실질적으로 제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나간 것이다.
[2강] 성공의 원동력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를 통해서 로마의 성공 요인으로 ‘관용’(tolerantia)을 꼽았다. 수많은 역사학자들도 로마제국의 성공요인으로 개방성과 관용을 꼽았다. 로마의 개방성, 리더십, 실력주의가 핵심 성공 요인이었고, 로마 공화정의 성공요인의 핵심은 개방성과 시스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단순하게 ‘관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로마는 ‘관용’을 해야만 했을까? 답은 ‘관용 안하면 안되니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로마 귀족이 평민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평민이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에니 전쟁에서 16년동안 이탈리아를 종횡무진 짓밟고 3만(최초 5만)의 병력으로 로마군 50만을 전멸시킨 한니발은 끝내 로마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좌절한다. 왜 한니발은 로마를 멸망시키고 카르타고 제국을 만들지 못했을까? 한니발은 16년동안 한번도 로마와의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패배는 마지막전투(자마전투)였다. 마지막 전투에서 한니발의 기병은 한니발과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이었지만 새로운 기병으로 보충되지 못했다고 한다.
고대 최강의 장군인 한니발에게 16년 동안 패하면서도 로마가 끝까지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탈리아 전역을 휩쓴 한니발의 군대가 끝끝내 로마를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투항하지 않은 로마의 식민지였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조지 워싱턴은 프랑스가 아닌 영국을 위해 싸웠다. 영국이 이겨야 유럽에 차를 더 많이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스트 모히칸인 모히칸족도 식민지모국인 영국을 위해 싸웠다. 영국이 이겨야 당시 경쟁 부족인 이로쿼이 부족을 몰아내고 허드슨강 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밖에 모르는 사람 이기주의자라고 하지만, 우리 집 밖에 모르는 사람은 효자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밖에 모르는 사람은 애국자로 불리기도 한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의 식민지들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를 배신하지 않고 로마의 편을 들은 이유는 로마가 이기면 나름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카르타고가 이기면 엿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니발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병사를 모을 수 없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미국이 패권국가로 도약한 계기는 제1ㆍ2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달러를 세계통화로 만든 ‘브레튼우즈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협정으로 이후 미국 달러 중심의 경제/무역체제가 구축되었다. 브레튼우즈가 진짜로 만들어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안전한 해로와 무역로를 보장하는 세계 경찰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러한 미국의 패권 구도에 따르는 국가들의 이익이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와 부합되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그러한 구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트럼프가 만든 미국이 제국으로서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경찰국가를 포기했기 때문). 새롭게 바이든이 다시금 수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귀족이 원해서 일으킨 정복전쟁을 인민도 원하고 인민에게도 이득이 될 때, 전쟁의 승리가 제국을 만든다! 그리고 그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민이 귀족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식민지 모국이 원해서 일으킨 정복전쟁을 식민지도 원하고 식민지에게도 이득이 될 때 전쟁의 승리가 제국을 만든다! 그리고 그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식민지 모국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들어진 제국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제국의 성공은 인민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해야 하고 인민은 기득권층을 견제할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제국은 속주국의 이익이 제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미국은 제국으로서 지속적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재 미국이 보여주는 금융자본주의, 월가민주주의, 미국우선주의가 다른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팍스 아메리카나’에 동의할 만한 모습인가? 그렇지 않으면 새롭게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그다지 긍정적인 전망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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