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1/3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책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조국 교수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유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부인의 사진을 보면 밀은 외모상으로는 완고하게 생겼지만 실제로 낭만주의자였으며 로멘티스트였다. 그는 친구인 테일러의 부인을 짝사랑했고, 친구가 죽을 때까지 18년 정도를 기다렸다가 친구의 부인과 결혼을 하였다. 테일러 부인은 밀이 스스로 고백했듯이 밀의 사상의 상당부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왜 자유론인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허위통신유포로 구속 기소가 되었다고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다. 미네르바가 주장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데, 검찰은 그 내용보다는 그의 학력(고졸)과 직업(무직)을 강조하였다. 그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였는데, 토론과 논쟁이 아닌 형사처벌로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미네르바 사건 이후 많은 네티즌들이 자신이 올렸던 글들을 내리기 시작했고(냉각효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미네르바는 정부가 금융기관에 공문을 내려보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정부기관은 공문을 내려보낸 적이 없고 같은 내용을 담당자가 전화로 지시하였다. 이것을 두고 공문이 아니라 전화이기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미네르바가 한 말의 내용이 아닌 미네르바의 학벌과 직업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관습’이 작동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네르바 주장의 내용보다는 그의 출신과 학벌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밀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자유를 주장하였다. 양심과 사상은 반드시 표현할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권력은 형사처벌이라는 것으로 제제를 가하려고 하였고, 경멸과 모욕을 통해서 억압하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양심과 공부에 기초해서 판단을 하고 그것을 드러내면 두 가지 방식의 제제가 가해진다. 즉 형벌권 아니면 각종 방식의 관습이 작동해서 경멸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 감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정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해 2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박원순의 발언이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유신시대는 ‘국가모독죄’를 적용하여 감옥에 넣었는데, 오늘날에는 민사적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자유’의 현격한 후퇴 현상이 생겼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매우 약하다. 이후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에 있어서 ‘자유’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언급한 ‘복지’는 ‘복리’, ‘행복’으로 이해해야 한다(제3장 복지의 요소인 개성, 126페이지 이하). 밀은 복리의 핵심 요소로 ‘개성’을 언급한다.
밀은 당시 영국의 상황은 개성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았다. ‘개성’에 대한 일반인의 무관심이 있었고, ‘관습의 횡포’가 심각한 상황이었으며, 인간 전체를 ‘동일화’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계명대학을 졸업하였다. 그가 출품한 모든 광고전에서 그는 모조리 낙방하였다. 그는 한때 대구지역에서 영화간판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디자인에 관련된 상을 휩쓸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나라에서 인정을 한 케이스이다.
개성이 있는 각각의 개인이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밀은 당시 영국의 사회에서 개성이 사라지고 있고 영국 사회가 개성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였다. 해방 이전에는 신간회가 만들어지고 공산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자들이 다 하나가 되어서 일제와 싸웠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문제가 적군과 아군의 문제로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너는 누구 편이냐?”를 묻기 시작했다. 어떤 사상을 이야기하면 그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편인가?’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왔다. 상명하복의 문화로 위에서는 명령하고 아래에서는 따르는 위계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의 어르신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줄을 잘 서야 한다!” “사람 많은 데로 가라!”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쪽으로 가야 안심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쪽수가 많다는 것은 ‘집단주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집단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를 소외시키고 경멸하고 외면하고 억압하면서 차별하는 편견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을 ‘진영론적 사고’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과거 급속한 경제개발 시대의 전략 중에서 국민소득 만불을 향해 나아가는 나라들은 대부분의 전략이 평균 수준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빨리 집단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는 그런 발전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낄 것이다.
『자유론』, 138쪽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이 나의 성격과 성향에 맞는가? 또는 무엇이 내 속에 있는 최고 최선의 것으로 하여금 공정하게 그 힘을 발휘하게 하여, 그것을 서장 발달하게 하는 것일까?” 라고 묻지 않고
“무엇이 나의 지위에 적합한가? 나와 같은 신분으로 같은 수입을 얻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또 (더욱 나쁘게도), 나보다 높은 신분과 재산을 갖는 사람들이 보통 어떤 일을 하는가?” 이런 것을 묻고 있다.
당시 밀이 살았던 영국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속에서 끓어오르는 개성과 욕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사회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 사회, 학교, 가정이 순응하고 있다.
자유를 누리려면, 내가 개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주적 인간’, ‘주체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관습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 본 후에 주체적으로 관습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는 ‘주체적 개인이 되라’는 것이다. 나 자신 속에 있는 욕망과 꿈과 개성을 먼저 보라는 것이며, 나 자신 속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주체적 개인끼리의 평등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혼자서 마음대로 노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아니다. ‘주체적 개인이 되어라. 그런 주체적 개인이 다른 주체적 개인과 평등하게 연대하라!’ 이것이 진정한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인은 다른 사람도 주체적 개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욕망과 취향과 개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반드시 관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핵심은 ‘관용’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자유주의가 오남용되고 있다.
- 체제수호 이데올로기?
- 냉전반공 이데올로기?
- 민주주의 국가권력의 통제 사상!
슈미트라는 독일의 법학자는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핵심을 ‘적과 나를 구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논리를 가지고 그는 나치당이 되었다) 이 논리를 받아와서 우리나라의 유신헌법이 만들어졌다. 유신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이 슈미트의 제자들이다. 좌파는 적이기 때문에 절멸해야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많이 혼동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재산권과 경제적 분야의 자유에 집중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 ‘자유주의’의 정치적 진보성 배제, 경제적 자유 중심의 우경적 재구성
- 시장 절대주의
- 국가권력의 시장개입반대 = ‘작은정부’
- 재산권 중시 자유주의
- 노동시장의 유연화
- 노동과 복지 경시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단결의 자유’를 중시하고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하는 자유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밀은 국가권력은 독수리의 발톱과 같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가 뽑은 자가 지배하지만 그 세력도 통제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이전에는 인민이 인민의 권력을 뽑으면 자기 통치이기 때문에 그 권력에 대한 통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밀은 설사 그것이 인민의 지배, 다수의 지배라고 하더라도 다수자가 폭정을 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서 권력을 쪼개야 한다고 보았다. 밀의 자유주의는 다수의 지배에 소수파에 대한 관용이 더해져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인민의 자기통치가 실현되었는데 피의 숙청이 일어났고, 러시아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았는데 그 권력이 프롤레라티라를 억압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인민의 대표자를 뽑았다고 하더라도 그 대표자가 인민을 억압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밀의 견해이다. 오늘날 소수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잡는 시대는 지났지만 다수자가 (선거를 통해) 뽑았다고 하더라도 그 다수자의 횡포가 발생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배제하고 재산권 중심의 자유를 주장했고, 재산을 행사하는 데 국가권력이 개입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주체적 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국가권력이 개입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밀이 말하는 자유의 세 가지 영역
- 양심과 사상의 자유
- 취향과 탐구의 자유
- 단결의 자유
밀이 이야기하는 양심 사상과 토론의 자유는 무엇인가? 밀의 시대에는 양심이라고 하면 대부분 종교를 전제로 했다. 밀은 양심과 사상을 내가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 때문이다.
- 권력이 탄압하는 의견이 진리인 경우
- 탄압받는 의견이 오류인 경우
- 일반적 통념과 이에 반하는 의견이 모두 진리인 경우
오늘날 종교는 ‘예수님처럼 살기, 부처님처럼 살기’를 추구하기 보다는 ‘예수와 부처를 믿기’를 강조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서 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했고, 보수단체는 그러한 참여연대에 대해서 격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밀의 경우에 적용시켜보면,
- 참여연대의 말이 진리인 경우
- 참여연대의 말이 오류일 수 있는 경우
- 각각 부분적으로 진리일 수 있는 경우
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형사처벌은 절대 안된다. 반드시 토론해서 처리해야 한다. 밀이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무오류의 독단이 초래하는 폐해
- 지적 노예상태 극복을 위한 필수품
- 토론 없는 진리란 독단이다
- ‘악마의 대변인’의 필요성
『자유론』 59쪽
“설령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부의 설명에 합리적 의심을 가질 권한이 있고, 정부는 그 의심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애국의 문제로, 적을 이롭게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입을 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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