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이 진정 구국의 영웅인가? 최고의 무장인가? 선무1등공신의 자격이 있는가? 임진왜란 발발 이후부터 행주대첩의 승리까지 권율은 뛰어난 활약을 한다. 그런데 행주대첩 이후에 도원수가 된 이후에는 큰 전투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어찌 저런 자가 도원수일까?’라는 언급도 있다. (원래 이순신의 인물평은 냉정하기로 유명하다. 이순신은 그러한 냉정함을 자신에게도 적용하였다.)
솔직히 권율은 뛰어난 무인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뛰어난 지휘관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집안이 금수저 집안이었다. 아버지인 권철(1503~1578)이 영의정이었으니 권율은 젊은 시절에 공부를 게을리하고, 술과 여색을 밝히고 여행다니는 거 좋아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40세까지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오성 이항복(1556~1618)이 사위가 될 정도의 집안이었다. 아버지 권철이 권율이 40세 때 죽게 되는데 ‘내가 너를 낳았구나!’ 하며 죽었다고 한다. 이것에 충격을 받아 각성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46세인 1582년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무과가 아니라 문과였다. (당시 무과합격자는 기본 전투력이 상당했다. 아무리 일본군이 백병전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기본 3~4명은 제압할 무력을 갖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권율은 전라도 광주 목사(3품)였다. 전라도 관찰사 이광(1541~1607)이 6만 병력을 모아서 서울로 진격할 때 함께 갔으나 와키자카 야스하루(1554~1626)에게 대패하는 쓰라린 경험을 한다(용인전투). 이때 황진 장군도 참전했었는데 황진은 당시 정찰 나가있다가 돌아와서 흩어진 패잔병을 수습하여 병력의 손실을 입지 않고 오히려 병력을 강화하였으며, 권율 역시 병력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것으로 본다면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광이 권율을 전라도 순찰사로 임명했고, 일주일 정도 후에 황진과 이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전라도 관찰사로 승진하게 된다. 이때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1만여명의 병력으로 한양을 향해 북상을 하다가 (예전에 야전에서 패했던 용인전투를 기억하면서) 수원과 동탄과 오산 사이에 있는 독산성을 점령하고 거기에 주둔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 우키타 히데이에가 독산성에 조선의 병력이 있는 것이 꺼림직해서 2만의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독산성이 워낙 수비하기에 견고한 성이었기에 전투 과정에서 일본군이 손실을 입게 되었고, 일본군의 다이묘 나카가와 히데마사(1568~1599)가 체포되어 명나라로 압송되었고, 후에 명나라에서 목이 잘린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독산성에 물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고 독산성을 에워싸고 물이 부족할테니 목마름으로 고사시키려고 하였다. 이때 권율은 독산성의 세마대지(洗馬臺址)에서 쌀로 말을 씻는 흉내를 내었다. 마치 멀리서 보면 물로 말을 씻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우키타는 포위망을 풀고 퇴각하였고, 권율은 퇴각하는 일본군을 공격해서 상당수 사상자를 내게 만들었다.
이때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했다(1593.1.9)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권율은 한양을 탈환하는데 합류하기 위해 조선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였다.
“전라 순찰사 권율이 수원의 독성으로 군사를 진출시켰다. 권율이 직산에 이르자 제찰사 정철이 경솔하게 진격하지 말도록 경계하므로 권율이 그대로 군사를 머물게 하면서 보고하였다. 조정이 전지를 내려 정철을 책망하고 권율을 재촉하여 경성으로 진출하여 도모하도록 청하였다. 권율이 지난날 평야의 전투에서 군사가 패한 것을 징계하여 독성으로 진출하여 머물렀다.
(중략)
경성의 적이 진을 나누어 군사를 출동시켜 왕래하면서 도전하였으나 권율은 성곽을 튼튼히 지키고 응하지 않으니 적이 군영을 태우고 퇴각하였다. 권율이 가끔 날랜 군사를 출동시켜 낙후한 적을 습격하자 기내에 주둔했던 적이 모두 경성으로 들어갔다. 이로부터 서로에 행인이 다닐 수 있게 되어 여려 의병들이 차례로 경기 지역에 진출하여 주둔하면서 중국 군사를 기다렸다.” 『선조수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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