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는 조선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면서 가장 차별받았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김종서 장군으로 하여금 함경도의 북쪽에 6진을 개척하도록 하였는데 오늘날의 부령, 회령, 종성, 은성, 경흥, 경원이다.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고 삼남지방의 주민들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썼다. 그렇게 해서 함경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과거에 낙방한 사람들이나 땅이 없는 소작인들, 노비들이 나름 혜택(?)을 받기 위해 함경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북쪽(4군과 6진)에 사는 사람들이 뿌리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1562~1611)가 함경도로 진출하였는데,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인 이혼은 도망쳐 버렸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1593)은 나름 가토와 대결하기 위해서 기마병력을 거느리고 경성을 출발하였다. 한극함의 기마병이 가토와 만나서 싸웠으나(해정창 전투, 1592.7.17) 나름 선전하다가 가토의 조총부대에 300명의 기병이 죽고 산으로 후퇴하게 된다. 다음날 새벽에 가토가 기습하여 조선군이 궤멸되었고, 한극함은 여진족이 있는 곳까지도망쳤다가 나중에 가토에게 잡히는 신세가 된다.
이때 경성에서 그 지역의 토호(아전)인 국세필(?~1592)이 난을 일으키고 일본에게 순응하겠다고 무릎을 꿇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순왜(順倭)인이라고 하는데, ‘왜란 당시에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협력한 자’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리고 회령에서는 국경인(?~1592)이라는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가토에게 항복한다.
당시에 회령에는 선조의 큰 아들 임해군과 여섯째 순화군이 회령에 와 있었다. 왕이 의주로 도망가면서 왕자들을 각 지역으로 보내서 근왕병(임금을 위하여 나라 일에 힘쓰는 군사)을 모집하게 했는데, 하필이면 조선왕조에 대해 가장 충성도가 낮은 지역에 가장 심성이 더러운 임해군을 보내버린 것이다. 강원도로 보낸 순화군은 시마즈 요시히로(1535~1619)가 강원도로 진격하자 함경도의 임해군과 합류한 상황이었다.
회령에서의 임해군과 순화군은 거의 양아치같은 행동을 했고, 국경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임해군과 순화군을 잡아서 가토에게 바쳐버렸다. 가토는 나름 일국의 왕자를 함부로 대해서야 되느냐고 밧줄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해군의 4살짜리 아들은 나중에 가토가 데리고 일본으로 가서 양아들로 삼아버린다. 임해군의 아들 태웅은 나중에 일본에서 일연(1589~1665)이라는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회령까지 진출한 가토는 욕심을 부린다. 만주로 진출해 보려는 생각에서 조선인들에게 여진족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여진족은 개개인이 용감해서 얕볼수 없다고 대답한다. 가토는 나름 일본의 용맹을 여진족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진족은 당시에 서쪽의 압록강 북쪽의 건주여진과 두만강 위쪽의 야인여진, 그리고 해서여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토가 공격한 여진족은 야인여진으로 ‘노토부락’에는 4만에서 7~8만이 살고 있었는데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토는 자신이 조선의 최정예 기병을 해정창에서 제압했기 때문에, 조선의 기병에게 눌려 살고 있는 여진족은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갑자기 기습을 받은 노토부락은 일단 후퇴했다가 가토 부대를 포위해서 기마전을 전개하였다. 이때 가토는 간신히 살아서 돌아온 것 같다. 회령에서 곧장 노토부락으로 건너갔던 가토가 다시 회령으로 오지 못하고 (퇴로가 끊겼을 가능성이 있음) 다른 길(종성, 경원을 거쳐)로 경성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길주까지 내려온 가토는 국경인과 국세필에게 그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게 하고 자신은 길주에 머물게 된다. 이로써 가토는 함경도를 완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경성 위에 명천이라는 곳에서도 정말수(?~1592)라는 반란군이 순왜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문부(1565~1624)가 함경도에서 가토를 몰아내기 위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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